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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①
가창성당 성경대학 졸업여행


글 김광고(요한)|가창성당

40여 년 전에 몇 번 타 본 비행기를 회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가창성당의 ‘창파 성경대학’ 어르신들의 6년의 결실인 졸업여행겸 제주도의 몇 안 되는 성지순례의 장도가 시작되었다. 비행기 이륙 때의 역동적인 엔진의 우렁찬 소리를 뒤로 하고 미지에 대한 동경과 기대로 가득 차서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도는 처음 가는 곳이었는데 그 처음의 느낌은 신선하다는 것이었다. 짠 바닷물 냄새가 아닌 싱싱한 미역냄새가 났다. 동글동글한 얼굴의 여성 안내인의 안내로 관광버스에 올라 한라산, 산방산의 전설을 듣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차에서 내려 어느 식당으로 들어가 고등어조림으로 배고픔을 달랬다. 다음 행선지로 우리는 송악산 올레길에 올랐다. 멀리 보이는 한라산과 산방산을 바라보니 마치 섬에서 섬으로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다를 동반자로 하여 올레길을 휘둘러 올라가니 가슴이 시원하도록 확 트였다.

다시 차를 타고 달려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이 매달린 나무와 돌담으로 아름답게 구획 지어진 들판을 지날 땐 ‘여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곤 했다. 시선이 닿는 풍경마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고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을 하며 성지순례 예정지인 무혈의 순교자 정난주의 묘역으로 향했다. 안내인으로부터 제주도 유배 중에 일어난 정난주 모자의 생이별과 유배지에서 의연히 생활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간 그녀의 일생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묘역에 당도했다.

정갈하게 꾸며놓은 묘역을 돌아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또 우리가 지켜가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것에 대해 감사드리며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비행기 탑승 시간대가 달라 잠시 이산가족이 되었던 동료들과 합류하기 위해 예약된 식당에서 동료들을 만나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미역국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맛난 식사를 제공해준 여행사측에 감사하며 숙소로 가서 하루 일정을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다음 날, 부산한 아침을 보낸 우리는 버스에 올라 차분한 마음으로 다음 행선지인 성이시돌 피정의 집으로 향했다. 성이시돌 피정의 집은 신자 개인이 삼위 일체의 성당과 십자가의 길을 조성했다고 한다. 십자가의 길 14처에 세워진 동상들은 참으로 사실적이어서 솔직히 무서운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이어서 우리는 김대건 신부님이 풍랑에 표류, 착륙하셨다는 용수성지로 향했다. 용수성지로 가면서 제주도는 어디를 가든 길마다 목가적이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용수성당은 김대건 신부님이 타고 있던 배 모양과 성당을 본 따 만든 기념관의 성격을 지닌 곳이다. 우리는 용수성당에서 본당 신부님께서 집전하시는 미사에 참례하였는데, 영광스럽게도 내가 독서를 하게 되어 더욱 의미있게 와 닿았다. 미사의 은혜를 뒤로하고 환상적인 테마파크인 한림공원을 돌아보고 용암과 바닷물이 만나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인 주상절리의 풍광에 경의를 표하며 이곳저곳을 더 둘러본 다음, 신부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시간을 무엇으로 즐길까 생각하면서 편안히 쉴 수 있는 숙소로 향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오늘은 무엇으로 어떤 추억을 만들고 남길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버스에 올라 에코랜드로 향했다. 평화로운 경관과 넓디넓게 조성된 지역을 보며 감탄을 하였다. 그랬는데 마지막 황사평 성지를 방문했을 때 그만 환상이 깨지고 말았다. 황사평 성지는 1901년 신축교안 때 희생된 700여 명의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이렇게 평화롭고 순해 보이는 이 고장에서 순교자들의 묘역을 보면서 나는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염원하면서 귀로의 비행기에 올라 일상의 생활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