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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대구 SOS 어린이 마을 엄마 오상음(소피아) 씨
울고 웃으며 가족이 되다


취재 김선자(수산나) 기자

  

대구 동구에 위치한 SOS 어린이 마을에 꽃비가 내린다. 어느새 빨간 벽돌집 마당에 수북이 쌓이고 그 길을 따라 가 현관문을 열자 가족사진과 아이들의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집안에서는 오상음(소피아) 씨가 청소기를 밀며 거실을 왔다갔다 하는 사이로 4살 빈이가 고사리 손으로 청소를 돕고(?) 있다.

2016년 교구장 사목교서 ‘가정, 가장 가까운 교회’에 걸맞게 살아가는 곳,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여라.’는 예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곳, 바로 대구 SOS 어린이 마을의 엄마들이 아닐까 싶다. 그 가운데에서도 17년 동안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함께 성장하고 있는 엄마 오상음(소피아) 씨는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유치원생 등 7명의 엄마로 살고 있다. 상음 씨는 “지금의 삶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삶인데 하느님을 알고 나서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소명, 은총의 삶”이라고 들려준다.

20대 초반, 신자인 친언니의 다양한 성당활동이 보기 좋아 무작정 세례를 받았던 상음 씨는 우연히 주보를 통해 SOS 어린이 마을을 알게 됐다. 그곳에서 엄마로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상음 씨는 “중·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 중에서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라.’는 글귀를 본 후 막연하게 돕고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본당 주임 신부님의 추천으로 SOS 어린이 마을에 오게 됐고 시골출신인 제게 SOS 어린이 마을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며 나 자신의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SOS(Save Our Souls의 약자로 “저희 영혼을 구하여 주소서.”라는 뜻) 어린이 마을은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가정 형태의 양육 환경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의 가정 해체를 예방하기 위해 가족들을 지원하는 국제민간사회복지기구(INGO)이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사랑의 가정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전 세계 134개국에서 활동하며 비유럽권 최초로 1963년 대구에 SOS 어린이 마을이 설립되어 어린이들에게 사랑의 가정을 만들어 주고 있다. 

25살 이모를 거쳐 27살에 엄마가 된 오상음 씨는 편모편부, 미혼모, 알코올중독, 가정폭력, 정신질환 등 다양한 사연의 상처가 깊은 아이들을 6개월부터 고등학생까지 자녀로 키워왔다. 그렇다 보니 사춘기 반항을 하는 아이, 이탈하는 아이 등 힘든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상음 씨는 “작은 묘목이었던 나무가 그늘을 만들 정도로 자란 것을 보며 어느새 자란 아이들도 서로를 이해하고 깊은 사이가 됐다.”며 “훌쩍 자란 아이들이 서로를 보듬고 제 일을 도와주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학기 초가 되면 아이들도 엄마도 예민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는 상음 씨는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이 선생님들에게, 학급 친구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몰라 신경이 예민하다.”며 “마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이 받게 될 상처와 차별이 있을까봐 수시로 담임선생님들과 통화를 하고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살피고 하교한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묻고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로 북적이지만 명절과 생일이면 사회로 나간 자녀들이, 다시 가족에게 돌아간 아이들이 소식을 전해온다. 아이들의 성장을 놓칠새라 사진을 찍어 앨범을 만들어 놓은 상음 씨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해 소개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는 큰딸 자랑을 늘어놓는 상음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제 품에 온 딸이 자립을 하고 1년 6개월 동안 연락이 없었는데 그때 친엄마를 만나 자신을 원하지 않는 것을 알고 방황했다면서 고맙다고 앞으로 동생들 잘 챙기고 동생들의 후원자가 되겠다.”며 “그 뒤부터 가족들 생일과 크고 작은 일을 챙기고 자립 하는 동생들도 살뜰히 보살핀다.”고 말했다. 또 상음 씨는 올해 고3으로 곧 독립을 앞두고 있는 큰아들에 대해 “아이들이 많다 보니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큰아들은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였기에 제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며 “그 아이가 커서 제 일을 도와주는 것을 보면서 참 미안하고 기특하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아들이 학교에 제출하기 위해 쓴 편지를 읽고 미안하고 고마워 참 많이 울었다.”며 어느새 훌쩍 자라 앞길을 찾아가려고 하는 아들이 고맙고 미안해 또 눈시울을 훔쳤다.

아이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지만 부모의 빈자리를 다 채워줄 수 없다는 상음 씨는 매일매일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힘들고 어려워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를 믿고 의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럴 수 없었다는 상음 씨는 “울고 웃으며 어느새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며 “사회에 나가서도 바르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독립을 하기 전까지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안아주고 사랑해주는 것밖에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상음 씨는 “처음 엄마가 됐을 때 더 잘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며 “그래도 그 아이들이 커서 고맙다고 하는 걸 보면 참 많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20년이 넘는 시간을 한결같이 후원하고 계신 후원자분들, 사회에 나간 아이들이 다시 후원자가 되어 그 사랑을 되돌려 주는 것을 보면 ‘하느님의 사랑은 참 크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며 “아이들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하느님을 알게 된 후 세상이 달라졌고 현재의 삶이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이라는 것을, 그 사랑으로 아이들에게 엄마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상음 씨를 통해 성가정을 이루는 사명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며 늘 기도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시간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