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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본당사무직원회 성지순례
청양 다락골 성지와갈매못 성지를 다녀와서


글 이숙자(데레사)|죽전성당 사무장

 올해 사무직원회(회장: 박희언 미카엘, 담당: 교구 사무처장 박석재 가롤로 신부) 성지순례는 박석재 담당 신부님과 사무직원 94명이 청양 다락골 성지와 순교성지 갈매못 두 곳을 다녀왔다. 집에서 나설 때는 호젓한 봄비가 우리를 안내 하더니 성지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광채처럼 밝고 따사로운 햇빛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청양 다락골(달을 안은 골짜기) 성지는 마을을 둘러싼 산의 형태가 다락 모양과 같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다락골은 크게 ‘새터’와 ‘줄무덤’ 두 부분으로 나뉜다. 최경환 성인의 아버지 최인주가 신해박해(1791년)를 피해 자신의 고향땅인 다락골에 정착하게 되면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여 병인박해(1866)때까지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새터’는 다락골에서 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 성인이 태어나 이성례 마리아와 혼인하였고, 그의 장남이며 우리나라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토마스, 1821-1861)와 그의 형제들이 탄생하고 성장한 곳이다.

 줄무덤은 병인박해(1866년) 때 홍주와 공주감영에서 치명하신 무명 순교자들의 묘이다. 박해 당시 교우들은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순교자들의 시신을 밤에 몰래 급히 수습하고, 한 봉분 속에 황급히 줄을 지어 가족끼리 시신을 묻었다 해서 ‘줄무덤’이라 전해져 왔으며 현재 40기 중 37기가 보존되어 있다.

순교성지 갈매못은 처참했던 한국 교회의 순교사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는 땅이다. 병인년 대박해(1866) 때에 신자들의 희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스스로 자수하여 체포되신 세 분의 프랑스 성직자와 두 분의 회장이 주님 수난 성금요일(3월 30일)에 군무효수를 당한 곳이다. 성인품에 오르신 이분들 외에도 『치명일기』에 기록 된 다섯 분의 순교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피가 젖어 있는 처형장이다. 갈매못은 갈마연(葛馬淵)에서 온 말이다. 갈증을 느끼는 말(馬)이 목을 축이는 연못이란 뜻이다. 이제는 말(馬)이 아니라 영적인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이 연못을 찾고 있다고 한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14)

 미사 중 박석재 담당 신부님은 강론에서 “순교자들은 무엇 때문에 인간다운 품위를 버리고 쫓기고 처참하게 처형을 당하셨을까? 믿음과 부활신앙이 없었다면 그 고초를 어떻게 감수할 수 있었겠는가? 부활절에 성지 방문을 한 우리도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우리도 순교자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청하며 미사를 드렸다. 그리고 갈매못 성지의 성당은 성전 앞쪽 문을 양쪽으로 열면 성전 안에서 탁 트인 바다가 바로 보여 너무 아름답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멋진 경관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성지 안내자 강 베로니카 수녀가 “지금 앉아 있는 성전, 바로 이 자리가 처형을 참관하던 장소이고, 성전 뒤로 보이는 넓은 바다가 순교자들을 처형하여 생매장한 곳”이라고 소개 했다. 순교자들의 무덤이라는 설명을 듣고 바다를 바라보니 그들의 처참한 죽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기념관에는 성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기념관 입구에 새겨진 “Qui a Jesus a tout.”(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 다블뤼 주교의 좌우명이 순교자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이튿날은 부여에 있는 부소산성에 갔다. 산성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낙화암(落花岩)은 백제 의자왕 20년(660년) 나(羅)·당(唐) 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함락될 때, 백제의 3천 궁녀가 이곳에서 백마강(白馬江)을 향해 몸을 던졌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바위이다. 말로만 듣던 낙화암 끝에 서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궁녀들의 죽음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숭고한 죽음의 가치를 묵상해보았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아니, 지금의 순교는 목숨이 아니다. 나의 삶이, 생활이, 오늘 하루가, 매순간 깨어 있어야 하고,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는 것을 다 행하지 못하고 있는 슬픈 마음을 알고나 계시듯 주님께서는 파란 하늘과 눈부시게 빛나는 밝은 빛으로 사랑과 용기를 주셨다. 우리 교구 본당사무직원 모두가 주님의 은총으로 이곳에 불림을 받았기에,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기쁨의 응답을 줄 수 있도록 두 손 모아 조용히 기도를 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