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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야기
사랑


글 박경현(프란치스코)|포항 오천고등학교 교장, 진량성당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버스가 떠나기를 기다리며 잠시 플랫폼에 서 있는데 가족인 듯 보이는 일행이 버스 가까이로 다가왔다. 지팡이에 의지하며 어렵게 발걸음을 옮기는 초췌한 노인을 아내와 아들인 듯 보이는 두 사람이 부축하고 있었다. 중학생으로 짐작되는 여학생을 데리고 떠나는 중년의 아주머니를 배웅하기 위해 힘겨운 외출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사양하는 아이에게 기어이 쥐어 준 듯 어정쩡하게 서 있는 아이의 휴대폰 덮개 안쪽으로 만 원 권 지폐가 삐죽이 보이는데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버스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자 노인에게 다가가 다시 잡았던 손을 거두며 뒤돌아보는 것조차 두려운 듯 아이의 등을 떠밀며 중년의 아주머니는 버스의 계단에 맞춰 머리부터 점점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그 순간 지팡이로 지탱한 노인은 버스 앞으로 뒤뚱뒤뚱 서둘러 걸음을 옮겨 서서 앞 유리창 너머 버스 안을 더듬더듬 방금 들어간 일행을 찾고 있었다. 곧 출발해 버릴 것 같은 조급함에 부인으로 보이는 할머니를 버스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어둔한 손짓으로 재촉한다. 버스 안을 들렀다 돌아 나오는 할머니의 손길을 따라 힘겨운 몸을 곧추세워 흐린 눈길이지만 안간힘을 쏟고 있는 순간 무심한 버스는 망설임도 없이 스멀스멀 뒷걸음으로 계류장을 빠져나가 빼곡히 늘어선 버스들 사이로 능숙한 몸짓을 일렁이며 멀어져 갔다.

노인은 버스가 지나간 그 방향으로 구부정한 상체를 조금씩 들었다 내리며 한참이나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서서 힘겹게 흔들던 손짓을 거두지 못했다. 큰 체구에 창백한 얼굴빛, 그리고 안경 너머의 희미한 눈동자 아래로 가족과 마지막 이별을 주고받는 듯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부축하는 두 사람에게 몸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금방이라도 풀썩 쓰러져 버릴 듯 마지막 기력조차 고갈된 채 천천히 돌아서서 끌리듯이 왔던 그 길로 되돌아간다. 일행의 등 뒤로 한여름의 뙤약볕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마지막 손 인사를 건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일행이 떠나간 그 뒷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서 있었다. 영화가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 마지막 장면처럼 그들의 이별이 아프게 다가왔다. ‘사랑’, 너무 가혹하기 때문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일까.

서둘러 출근을 한다. 교실이 부족하여 지금은 교사동의 4층 구석진 곳에 두 평 정도의 골방을 사용하고 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늦은 밤까지 직접 볶은 원두를 챙겨 교무실로 내려가는 것이다. 오랫동안 인스턴트커피를 애용하던 선생님들은 신부님이 정성스럽게 내려주는 커피로 향기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한두 번의 이벤트로 끝날 것이라는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부임 이후 지금까지 커피를 거르는 일은 없다. 우리 학교처럼 어느 날 갑자기 가톨릭재단으로 인수된 학교의 경우 신부님은 관심과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학교에 신부님이 계신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저승사자 같아요.”, “중국집 배달부 같은데요.”, “신부님 아버지도 신부였어요?” 등등 긴 수단을 입은 사제를 처음 본 아이들이나 선생님 모두 호기심 어린 반응을 보였다. 사제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간다는 설명을 듣고는 측은함과 아쉬움이 묻어나는 표정을 짓는 아이들이 재미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재단이사장을 대신하여 학교경영을 관리감독하거나 선생님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위해 신부님이 파견된 것이라 확신할 것이다. 가톨릭법인에서 운영하는 학교이기에 사제를 통하여 종교를 강요하거나 다양한 종교행사에 동원될 것이라는 선입견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두렵고 부담스러운 대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학교에서 봉직하고 있는 교목 신부님들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학교가 직장일 수밖에 없는 우리 평신도들과 달리 학교가 거룩한 사제직을 수행하는 장소가 되고 있는 신부님들의 삶은 그 자체가 가톨릭의 건학이념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표지인 것이다.

학교 안에서 정기적으로 미사가 봉헌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신부님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탈렌트로 세속적인 가치에 매몰되어 가는 학교의 현장에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나보다 6개월 늦은 2014년 3월 1일자로 우리 학교의 첫 교목 신부님으로 오신 주요한(요한) 신부님은 낯선 학교 현장에서 아름다운 삶을 통해 드러내는 향기로 소리없이 학교를 변화시키고 있다. 분주함이 일상이 되었고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또 오늘과 다를 것이라 기대할 것도 없는 생활 속에서 작아 보이지만 소중한 가치를 몸소 실천하여 신선한 변화가 신부님으로부터 번지고 있다. 선생님들은 출근한 순서대로 커피메이커 앞에 컵을 한 줄로 가지런히 놓아두고 신부님을 기다리며 즐거워한다. 가장 연장자인 선배 선생님은 매일매일 커피를 내리는 기구를 깨끗하게 닦는 봉사를 하며 신부님께 보답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1년여를 지나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커피의 전문가가 되어 향기만으로도 원두의 종류를 맞히며 유쾌하게 웃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금년도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1년 동안 저축한 초과근무수당으로 제법 고가의 자동커피메이커를 사둔 이후 매일 커피를 손으로 내릴 필요는 없지만 품질 좋은 생두를 직접 볶아서 채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그 일은 공동체를 향한 기도인 것이다. 커피를 제공한 다음 일과는 교목실에서 손으로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전교생 아이들과 교직원의 생일달력을 만들어 두고 일일이 손편지와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한다. 모바일 문자가 판치는 세상에 글씨 한 자 한 자에 기도하는 마음을 담은 손편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케이크와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고깔모자를 쓰고 교실로 달려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까지 불러 주면 그 순간 아이는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기억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였을 때 어머니의 품속에서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그 순간 이 세상의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철이 들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면서 우리 아이들은 소중하게 대접받았던 기억보다는 사회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늘 비교당하면서 강요와 질책으로 상처받은 주변인으로 내몰린 것이다. ‘교육은 행복을 키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교육의 목표는 개인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내면의 인간성을 키워 남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알아가는 것에 대한 성취감으로 행복했던 기억들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어느 순간 학교는 상위 10%의 아이들만이 존재감이 있을 뿐 대다수의 아이들은 인정받을 기회조차 없는 공간이 된 것이다. 삶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언제나 가장 앞서가는 사람을 위하여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모두를 그 방향으로 몰아가는 주입식 교육의 풍토에서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모두에게 가능한 환경이 아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학생들은 때때로 학교생활을 지속해야 할 의미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무어라 큰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묵묵히 어제와 같은 생활을 반복하면서 내일을 떠올리기 싫어진다. 그들은 때때로 지금의 삶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학생이란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란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인명단에 오르고 교복이란 죄수복을 입고 공부란 벌을 받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이런 느낌에서 벗어나고픈 학교에 갇혀 있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렇듯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진심 어린 축하를 받는 행복한 느낌이 참으로 낯설다. 그것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나를 소중하게 불러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생일을 신부님이 챙겨 주는 것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 속으로 한 발 한 발 다가선 신부님의 진심 어린 열정으로 이제 신부님은 아이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신부님이 계단을 오르내리면 달려가서 수단 자락을 들어 주기도 하고, 가정문제, 이성문제, 진로문제 등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으며 수다를 떨기도 한다. 신부님의 방에 들어서면 냉장고는 언제나 개방되어 있고 아이들은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소파에 드러눕기도 하고 어울려 장난을 치기도 하는 등 지친 마음을 달랜다. 가끔 오가면서 ‘신부님께 예의를 갖추라.’고 아이들을 나무라면 신부님은 ‘제 방에서만이라도 아이들이 편안했으면 좋겠다.’며 오히려 선생님들을 말린다. 사제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고 계실 만큼 높은 수준의 노래 실력과 기타연주 실력을 아이들과 공동체를 위하여 기쁘게 봉헌하고 있는 것이다.

 매주 목요일 저녁 식사 시간에 운동장 한쪽에서 열어주는 행복콘서트는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이벤트가 필요할 때면 점심시간이나 등교시간을 가리지 않고 신부님의 노랫가락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조금은 어색할 것이라 여겼던 고등학교 신입생을 위한 미사와 수험생을 위한 미사 역시 모든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정기고사가 있는 첫날에는 전교생들에게 초콜릿을 준비하여 나누어 주며 격려를 하고, 시험 기간 늦은 밤 시간에 종종 아이들이 많이 찾아가는 공공도서관이나 독서실 근처의 분식집에서 간식을 사주거나 빵과 음료를 나누어 주는 게릴라식 이벤트도 열어준다. 진심어린 사랑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있다.

2014년 3월 신부님이 우리 학교로 발령을 받아 왔을 때 전교생 750여 명 중에 가톨릭 신자학생들의 숫자는 불과 12명 정도였고 교직원들 중에도 가톨릭신자라고 말한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매주 열리는 학생 미사에 아이들이 교실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자신의 가장 힘겹고 외로운 순간 생각나는 사람이 신부님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 가정의 경제적 파탄이나 부모님의 불화로 인하여 아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가출이나 자살충동 등 극단적인 순간에 신부님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며 기댄다.

새롭게 출발한 오천중고등학교가 빠른 시간 안에 학부모들의 신뢰를 회복해 갈 수 있는 것도 가톨릭이라는 이름의 법인과 교회의 가르침을 몸으로 보여준 한 사제의 역할이 큰 몫을 차지했다. 가톨릭 사제의 삶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기회조차 없었던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이제 신부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여러 학교에서 교사로서 혹은 교목사제로서 언제나 사람들 속에서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신부님은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헌신의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이 쏟은 다양한 모양과 빛깔을 가진 사랑을 일일이 말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지난 후 문득 되돌아볼 때 지금 받은 그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에 대한 응답은 지금 즉시 듣지 않아도 행복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