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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중국성지순례 기행문 - 상해 인근지역
김대건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글 이다은(마리아)|성토마스 청소년시범성당 주일학교, 중2

 우리 본당의 주국진(보나벤투라) 주임신부님께서 중국성지순례에 함께 갈 사람은 신청하라고 하셔서 얼른 신청했다.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는 것이어서 무척 기대를 하며 7월 28일(목)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중국으로 떠나는 28일 아침이 되었다. 새벽 6시라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피곤한 줄도 모르고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출발했다.

1시간 30분 정도 비행기를 타고 중국 상해의 푸동공항에 도착했는데 정말 더웠다. ‘이렇게 더울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더웠다. 도착했을 때가 점심시간이라 바로 중국 음식을 먹으러 갔는데 뭔가 나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그런 맛이었다. 처음이라 그러려니, 나중에는 괜찮아지려니 생각했는데 마지막까지 중국 현지 음식은 사실 입맛에 맞지 않았다. ‘역시 한국 사람 입에는 한국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며 첫 번째 순례지인 김가항성당으로 향했다. 김가항성당은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께서 사제 서품을 받으신 곳인데, 원래의 성당은 철거 되어 다른 곳에 지어진 것이 이곳이라고 했다.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한국으로 오실 때 타셨다는 라파엘호의 모습을 본뜬 경당에서 미사를 드린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홍커우공원에 들러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둘째 날에는 주문모 신부님의 고향인 쿤산에 있는 육가방성당을 가장 먼저 순례했다. 성당을 둘러 본 후 신부님께서 주문모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와서 사목하신 분이 바로 주문모 신부님이라고 하셨다. 그전에 다른 분을 파견했지만 먼 길을 돌아오시다 한국땅에 오시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어 주문모 신부님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오시게 된 것이라고 하셨다. 그 뒤 박해가 일어나 우리나라의 많은 분들이 순교하셨는데, 처음에는 중국으로 되돌아가려 하시던 신부님께서 마음을 바꿔 신부임을 밝히고 순교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박해를 받으면서까지 천주교를 믿으신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다음으로는 칠고성모당이라고도 불리는 양가교성당에 가서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서 천둥도 치고 바람도 많이 불어 속으로 많이 걱정되었다. 그랬는데 신부님께서 “우리가 미사를 봉헌할 동안만 비가 오고 나갈 때가 되면 그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정말 그럴까 의심을 했는데 진짜 비가 뚝 그쳤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저녁식사로 삼겹살을 먹었는데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도 한식이 정말 반가웠다. 둘째 날의 마무리는 세계 3대 가무쇼 중의 하나라고 하는 ‘송성가무 쇼’ 관람이었다. 중국의 엄청난 스케일에 깜짝 놀라고 멋진 공연에 또 한 번 놀라는 시간이었다.

셋째 날에는 가장 먼저 횡당성당으로 갔다. 횡당성당은 김대건 신부님께서 신부님이 되시고 나서 첫 미사를 봉헌한 곳이었다. 그런 뜻깊은 곳에서 내가 미사를 봉헌한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제대를 제외하고는 그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말씀을 들으니 더욱 신기하고 가슴이 벅찼다. 그런데 도시개발 때문에 곧 철거될 것 같다고 하셔서 안타까웠다. 혹시 다음에 이곳에 올 때쯤 이 성당이 없을 수도 있다니! 그런 아쉬운 마음을 안고 이동한 곳은 서산성모동산이었다. 성모님과 관련된 기적이 일어난 곳으로, 중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순례하고 싶어 하는 곳이라고 했다. 언덕을 올라가는 길이 덥고 힘들었지만 아름답게 꾸며진 성모동산과 크고 웅장한 성당을 바라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성모상 앞에 앉아 묵주기도를 바치는 중국인들의 목소리도 내 기분을 좋게 해주었던 것 같다. 동산을 내려와 방문한 곳은 옛날 중국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는 예원과 현대 건물들이 조명 쇼를 보여 주어 장관을 이루는 황포강을 관광했다. 직접 중국 상인과 흥정을 하며 물건도 사고 멋진 야경도 구경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3박 4일의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날은 아침에 일어나 바로 한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 본당에 모여 파견미사를 봉헌하고 9월 4일에 다시 한 번 모이기로 약속한 후 헤어졌다. 여러 성지와 중국의 명소를 다녔던 시간을 되돌아보면 아쉬운 마음이 가장 크다. 더 많은 곳을 가보지 못한 것도 아쉽고, 방문했던 성당들을 구석구석 잘 살펴보지 못한 것도 아쉽다. 또 기도를 많이 하지 않고 돌아온 것 같아 더 아쉬웠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3박 4일 동안, 나도 모르게 나의 신앙에 대해 많이 되돌아보고 생각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특히 김대건 신부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을 둘러보고 미사를 봉헌하는 내내 ‘만약 내가 박해의 상황을 겪게 된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곤 했다. 아마도 천주교를 버리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까지는 나의 신앙심이 그분들만큼 되기에는 많이 부족하니까. 하지만 앞으로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성당에서도 열심히 봉사하며 살아간다면 순교자들만큼은 아니어도 점점 더 신앙이 깊어지지 않을까? 내년에도 해외성지순례의 기회를 갖게 된다면 그때는 후회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일정에 참여하고 기도도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행복하고 좋았던 그 순간들을 잘 기억해야겠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우리 본당 신부님, 함께 순례했던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우리를 안전하게 보살펴 주신 하느님께 가장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