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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희망의 공장
가정과 노동


글 강영목(요한보스코) 신부|교구 가정담당

 <새로 이사온 이웃 사람이 일곱 살짜리 옆집 꼬마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 집엔 식구가 몇 명이나 살고 있니?”

“여덟 명이에요.” 아이가 말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니 돈깨나 들어가겠구나.” 이웃 사람이 놀라 말했다.

“우린 아이들을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 키우고 있는 걸요.” 아이가 말했다.>

- 『느낌이 있는 이야기』 중에서.

얼마 전 우리나라 취업자의 노동시간과 관련된 뉴스 보도가 있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연간 취업자의 노동시간이 많은 나라라는 것이다. 굳이 통계자료를 보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낸다. 게다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부부에게는 직장생활 노동의 연장이 가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퇴근하여 집안일, 육아, 기타 가정의 많은 일들을 다시 반복하게 되면서 여유를 지니고 숨 고를 시간 없이 하루가 흘러가는 것이 오늘날 많은 젊은 가정들의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가정 안의 사랑과 행복보다는 위의 이야기처럼 경제관념으로 우리 가정을 들여다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육비, 생활비, 통신비, 적금 등등 한 달에 지출되는 비용들 속에 한숨짓고 소중한 가족 안의 참된 행복의 가치는 저 멀리 남의 이야기로 여길지도 모른다. 또한 위 이야기의 이웃 사람처럼 모든 것을 숫자로 환산하여 생각하고 계산하는 모습으로 우리 가정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가정과 관련한 노동 본질의 가치를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신다.

 

“노동은 일반적으로 가정을 유지하고 자녀들을 양육하며, 고귀한 삶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장하는데 있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노동하는 삶의 모습은 가정 안에서 배웁니다. 가정은 부모의 본보기로써 노동을 가르칩니다. : 아빠와 엄마는 가정과 사회의 선(善)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2015년 8월 19일 일반 알현 중에)

 

교황님은 본질적으로 노동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며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고귀함을 드러낸다고 하신다. 그러기에 영적인 삶과 노동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전혀 반대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기도와 노동은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흔히 많은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이유로 직장생활의 바쁨과 여유없음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사실 교황님의 말씀처럼 신앙생활 따로, 일상생활 따로의 삶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삶은 일상 안에서도 계속되어야 하고, 일상의 삶(노동하는 삶)이 신앙생활 안에 투영되고 성장해 가는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황님은 직장생활 때문에 가정을 등한시 할 수 있는 오늘날의 풍조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말씀을 던지신다.

 

“현대의 직장은 때때로 노동의 생산성을 위해 가정을 하나의 방해요소로, 짐으로, 수동적인 요소로 여기는 위험한 성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질문해 봅시다. : 도대체 그러한 생산성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2015년 8월 19일 일반 알현 중에)

 

가정은 노동을 배우는 첫 공동체이며 시작이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목수의 아들로 불리셨다.(마태 13,55) 오늘날 가정이 각자의 노동을 통해 유지되어가는 가운데 자칫 가정 본연의 사랑에 바탕을 둔 헌신과 희생, 수고와 노동의 모습이 아니라 노동이 마지 못해 행해야 할 의무가 되어 귀찮은 일이 되고, 그래서 가정의 구성원이 부담스런 존재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랑과 신뢰에 바탕을 둔 가정 안의 일에서부터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자라난 자녀들 또한 노동 본연의 기쁨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양적인 성장에만 집착하는 오늘날 노동의 모습을 뛰어넘어 인간의 소중함을 우선시하는 직장의 모습을 갖춘 사회에로 나아가게 된다.

 

오늘 당장 우리 가정의 노동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일들이 아니라 순간순간 우리 가족을 향한 사랑과 정성을 담기 위한 노력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