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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들의 가족찾기 프로젝트 - 엄마, 보고 싶어요
미국 입양인 레베카 케이(Rebeca Kay)
- 오인덕


글 김 데레사 수녀|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수녀원이 시작된 1915년 이래 백백합보육원을 거쳐 입양된 수많은 해외입양인들이 성장하여 자신의 친가족을 찾기 위해 모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해외입양인들이 감동적인 친가족상봉을 하였습니다. 매번 상봉이 이루어지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기도해 주신 <빛> 잡지 형제자매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아직도 상봉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기도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두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레베카 케이 씨가 두 번째로 한국을 찾아 왔다. 2014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 32년 전 자신을 발견해 파출소까지 데려다 준 김모 씨와 극적인 상봉을 했었다. 이번에는 지난달 결혼한 신랑과 함께 신혼여행 겸 한국을 찾아 왔다. 여행은 하필이면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 8월로 잡혀 있어서 매우 염려하는 나에게 케이 씨는 서울을 출발하여 남부지방을 돌아 강원도 평창까지의 꽉 짜여진 한반도 일주여행 지도를 보여주었다. 이 땅 어딘가에 살아계실 것만 같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의 나라를 조금씩 알아가는 기쁨이 더 크기에 그녀에게는 숨막히는 무더위 속의 여정마저도 희망이고 설렘이라고 했다.

아동카드 기록에 의하면 케이 씨는 1984년 5월 2일 저녁 9시경 대구역 대합실에서 울고 있는 것을 김 씨가 발견해 가까운 역전파출소에 신고하였다. 케이 씨는 그날 역전파출소를 통해서 백백합보육원에 맡겨졌으며 한국 이름 오인덕은 보육원에서 지어주었다. 보육원에서 6개월여 보살핌을 받은 케이 씨는 그해 11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 미시간주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엔지니어였던 양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했다. 양부모는 케이 씨에게 발레, 피아노와 바이올린, 스포츠 등 흥미를 보이면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보육원카드에서의 울먹이는 표정은 간데없이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여 현재 미국 보스턴에서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녀를 파출소에 데려다 준 김 씨를 남편에게 소개하고 싶어 여행 중간지점인 부산에서 김 씨를 만났다. 김 씨는 케이 씨를 다시 만나 손을 꼭 잡고 “우리 딸과 우리 사위, 내년에 칠순이 되어 초대하니 그땐 아기와 함께 셋이 오기로 약속하자.”고 했다. 파출소에 인계한 사람을 만나도 극진하게 대하는 케이 씨는 생모도 꼭 만나고 싶다면서 ‘Searching for UMMA’라는 제목의 전단지를 나에게 건넸다. 그녀가 날마다 부르기를 고대하는 UMMA(엄마)가 꼭 나타나길 기도한다.

 

[어머니를 찾습니다]

“1984년 5월 2일 저는 대구 기차역에서 발견되었던 여아입니다. 당시에 만으로 1.5살이었습니다. 저는 미국으로 입양된 후 현재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혹은 다른 혈육의 안부를 알고 싶습니다. 만약에 저를 알아보셨거나 제 가족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계신다면 이메일을 꼭 보내주세요. 저의 어머니와 가족들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searching4umma@gmail.com 또는 카카오톡 : BekiK.

 

케이 씨에 대해 아시는 분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해주시고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주변에 널리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백백합보육원 입양인 지원 : 053-659-3333

김 데레사 수녀 : spct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