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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희망의 공장
가정과 위령 성월


글 강영목(요한보스코) 신부|교구 가정담당

11월 위령 성월이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우리 역시 성직자 묘지 앞에 쓰여진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글귀를 바라보며 당장의 욕심과 만족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허락하신 매순간의 현재를 사랑 안에 충실히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달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단풍이 든 나무들의 잎이 떨어지고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과도 잘 어우러지는 11월이기도 하다.

또한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간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 가정 안에 올 한 해 동안 얼마나 변화된 삶, 성장해 온 삶을 살아왔는지 돌이켜 보기도 좋은 때다. 이런 생각없이 그저 앞만 보고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 가족을 살펴 볼 일이다. 우리 자녀들이 한 해 동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성장해 왔는지 찬찬히 대화하며 살펴볼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다. 부모님의 건강이 어떠신지 안부를 여쭐 수 있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고, 나와 내 주변의 이웃들은 한 해동안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차 한 잔 하며 살펴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처럼 11월은 정신없이 살아왔던 한 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찬찬히 살펴보는 머무름의 달이 아닌가 싶다. 이는 위령 성월의 정신과 같이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우리 역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있음을 알기에 현재를 잘 살아가기 위한 다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당장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11월을 살아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위령 성월의 모습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사회의 가정의 모습은 예전의 이상적인 구조, 곧 부모와 자녀, 할아버지, 할머니 대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구조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발견한다.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맞벌이 가정, 1인 가정 등 다양한 가정에 맞는 적절한 사목을 해나가기란 더욱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해결할 방법이 없는가? 그렇진 않다. 그것은 가정이 지닌 본질을 잊지 않고 다양한 가정을 위해 나눌 수 있는 노력을 할 때 가능하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최소의 공동체가 가정이기에 다양한 모습의 현대 가정에 사랑이 깃들일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위령 성월을 살아가며 우리가 한 해를 돌아보고 또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내 주위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를 전할 수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가정은 사랑으로 살아가고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주변의 다양한 이웃들의 삶에 사랑으로 내미는 손길과 웃음을 통해 관심이 부족한 가정의 삶의 구조에 희망과 행복을 알려주는 것이다.

오늘날 나만의 가정이라는 좁은 가정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시각을 지닌 가정을 바라볼 노력이 필요하다. 나만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가정을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성가정을 계속해서 닮아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나의 가정과 우리 이웃의 가정, 우리 본당 가정, 우리나라 가정으로 계속해서 넓혀가다 보면 교황님이 말씀하셨듯 문제가 아닌 기회의 가정(『사랑의 기쁨』, 7항)을 만들어 갈 수 있고 더 좋은 모습으로 성장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 단편선』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천사가 벌을 받고 세상에 와서 세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 첫 번째가 ‘인간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이며, 두 번째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이고, 마지막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결국 천사는 이 세 가지를 깨닫고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게 된다. 인간의 내부에는 사랑이 있으며,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육체에 대해 돌볼 때를 모른다는 것, 곧 죽음의 때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느님 한 분 외에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기에, 하느님은 사랑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인간이 서로 하나가 되고 함께하기를 알려 주셨다는 것을 위령 성월을 살아가며 특별히 묵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도 사랑이며, 내 주변의 우리 가족 개개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며 용서하고 품을 수 있는 마음도 사랑이다. 내 이웃들과 나와의 더 좋은 모습을 돌아보며 다시 시작하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무엇보다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에서부터 의미있고 소중한 이 달의 정신을 살아가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