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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1년을 지내며
- 2015년 6월 23일부터 2016년 6월 23일


글 김형호(미카엘) 신부|중앙아프리카공화국 선교사목

 

이번 호부터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교 사목 중인 김형호 신부의 글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국을 출발하여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낸 1년의 삶을 통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신자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선교사목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 주(註)

 

출발 하루 전 : 2015년 6월 22일

잠시 ‘파리외방전교회’에서의 머무름을 끝으로 나의 선교여정이 시작된다. 오랜 시간 선교를 위해 언어를 연수하고 준비를 했다지만 부족함 투성인 채 시작이다. 삶이란 게 그렇겠지만 새로운 시작의 충분한 준비란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과 투신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짐의 단호함도 살면서 퇴색될 것이며, 투신의 열정도 게으름과 적당함의 타협으로 식을 게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작은 몸의 긴장과 함께 다시 힘내 살라 응원한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보름 동안 머무른 내 방은 정확히 185년전 베트남으로 선교를 떠났다가 8년을 살고 순교하신 성인의 방이다. 난 이곳에서 잠시 쉬며 놀았지만 왠지 짠하게 다가온다. 이왕이면 좀 잘 살라 한다.

 

도착 : 6월 23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중아공 방기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기내 캐리어를 끌고 활주로의 끝부분을 직접 걸으며 공항 대합실로 향했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첫 발걸음을 예상했던 무더위가 반가이 맞아 주었다. 에볼라 및 예방접종 여부의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공항을 나서는데 남종우(그레고리오) 신부님과 장 바오로 형제, 중아공 Dieu-Beni 신부가 맞아 주었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조 율리엣다 수녀님도 나왔다. 공항에서 간단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환영식을 하고는 앞으로 1년간 묵을 숙소(성당)로 향했다. 3년 전에 답사를 위해 방문했던 모습이 펼쳐진다. 전쟁 후유증인지 사람들이 조금은 줄어든 듯했고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기발랄함이 여전히 있지만 예전과는 조금 다른, 차분한 분위기다.

공항에서 20여 분 달려 다다른 곳은 ‘Yapele(야뻴레성당)’이다. 앞으로 내가 1년간 살아야 할 성당이자 숙소다. 전기는 하루에 8시간 매일 시간을 교차하며(5~13시, 13~21시, 21~5시) 들어온다. 그나마 수도라서 전기가 있지 이곳을 벗어나면 전기가 없다. 물은 깨끗하지 않은 수돗물을 받아 두었다가 먹는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직접 그 물을 마시려고 하니 머리는 먹으라 하는데 입은 잘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한 모금 들이키고 잠을 청했다. 더위와 생소한 아프리카 도시의 소음이 첫날밤의 잠을 방해했다. 몸은 피곤한데 첫날은 이렇게 지난다.

 

낚시 : 6월 26일

어릴 때 형과 낚시를 즐겼다. 지금도 고기 잡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잘 가는 걸로 봐서 좋아하는 것 같다. 오늘 우방기강(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콩고 국경 사이를 흐른다.)에서 낚시를 하는 어린 아이를 보았다. 또래 유년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난 잡은 고기를 먹기도 했지만 재밌거리였는데 이들에겐 생계인 듯하다. 웃으며 즐겁게 하는 모습은 같았지만 살기(먹기) 위해 잡는 모습이 조금 짠하다. 그래도 웃고 있고 그리 힘들게 보이지 않아 좋다.

 

축복 : 6월 28일

미사(6시, 여기서는 아침미사)를 마치면 사람들이 각자 들고 온 물통들 앞에 줄을 선다. 때가 낀 크고 작은 통들에 물을 미리 채우고 간간이 소금도 함께 놓고 성수축복을 받는다. 이곳에 와서 내가 지낸 네 번의 평일미사 동안 매일 20~30통씩 축복을 했으니 물의 축복에 대한 신심이 남다른 것 같다. 함께 사는 신부에게 물어보니 아픈 사람들을 위해, 집과 사람의 축복을 위해 쓴다고 한다. 가끔 마시기도 한단다. 신학을 배울 때 성수를 과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배웠는데 이들에겐 헤프다기보다 성수에 대한 간절한 의탁이 있어 보인다. 아파도, 힘들어도, 자신과 가족의 축복을 위해 사람(성별된 사람)들에게 쓰이는 성수는 그 자체로 거룩함을 드러낸다. 우린 아프면 병원부터 가지만 이들은 먼저 하느님께 매달린다. 어쩌면 그것뿐이다. 좋은 병원도 없고 갈 돈마저 없으니…. 어쩌면 이들에겐 병원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거룩함 : 6월 28일

교회는 전례의 거룩함을 보존하기 위해 전통을 중요시하며, 다양한 지역문화 또한 존중한다. 오늘 중아공 방기교구의 한 미사 안에 신명나는 노래와 춤을 통해 색다른 전례의 거룩한 꽃을 보았다. 한국의 미사, 우리가 드리는 전례는 어떤 거룩함을 드러내고 있을까? 나는 이곳에서 어떤 거룩함으로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할까? 우린 이미 하느님 사랑으로 충분히 거룩하지만 아직 그 거룩함을 완성하지 못했기에 오늘도, 내일도 제 나름 성화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각자의 삶을 통해….

 

고아 없는 나라 : 6월 29일

지난 2년간 큰 전쟁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당연히 전쟁고아가 많겠구나 생각했다. 전쟁은 있었으나 고아가 거의 없단다. 왜냐고 물었더니 형제 중에 누군가 병이나 전쟁으로 일찍 죽으면 다른 형제가 그의 자녀를 부양해서 그렇단다. 자기 자녀만도 먹여 살리기가 만만찮은데 형제의 자녀를 기꺼이 부양하는 모습, 예전엔 우리에게도 흔한 모습이었는데…. 전쟁 중에 가족을 잃은 이들, 슬프기도 하고 한편 그래도 마음 한 곳이 따뜻해진다.

 

야간경비원 : 6월 29일

이 나라는 워낙 가난한 나라인지라 생계형(?) 도둑들이 많고 그로 인해 집을 지키는 경비원들이 많다. 우리 집(야뻴레성당)에도 야간 경비원이 있다. 그는 매일(휴무 없음) 오후 5시에 출근하여 아침 7시에 퇴근한다. 마당 한 켠에 그리 편하지 않은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가며 밤새 성당을 지킨다. 열대 모기에 밤새 뜯겨가며 긴긴 밤을 스마트폰도 없이 불빛도 없이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있다.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니 힘들지만 가족을 위해 20여 년 가까이 이 일을 하고 있단다. 가족은 13명(아내와 자녀 6명, 어머니와 조카 5명). 집은 가까이 있냐고 했더니 1시간 반 정도 걸어가면 있단다(출퇴근에 3시간). 집에서 몇 시간 자냐고 물으니 2시간 정도. 피곤하지만 집안일도 해야 하니 그는 한밤중에 3시간 정도 앉아 잔다(실제 조는 것으로 보임). 그의 의자를 보니 조금 아쉬움이 있던 내 책상과 의자가 너무 좋아 보인다. 2시간 집에서 자고, 3시간 정도 야간 경비 중 새벽에 의자에 앉아 쉬는 게 전부인 셈. 월요일, 화요일에는 예비신자 교리반도 맡고 있다. 열대 모기에 뜯겨 가면서 가족을 위해 사는 그의 모습이 불현듯 성인처럼 보인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