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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노동의 가치


글 이관홍 바오로 신부 | 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

요즘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합니다. 한국인들도 먹고 살기 힘들고, 이주민들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합니다.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고, 비정규직 문제에 정리 해고 문제 등으로 한국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한 사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면, 가장 약한 계층이라 할 수 있는 이주민들은 선주민들에 비해서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지금 한국 사회 안에서는 이주민들의 남하현상이 점점 가속화 된다고 합니다. 수도권 지역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지방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수도권 지역이 아무래도 물가가 비싸고, 특히 미등록 체류자(불법 체류자)들의 경우에는 잦은 단속으로 안정적인 생활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방이든 수도권이든 이주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이 있습니다. 일부 한국인들은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니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막상 노동 현장에서는 한국인들이 꺼리는 일자리들을 이주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고 합니다. 이주 노동자들을 구하는 구직 광고를 보면, 대체로 3개월 또는 6개월 정도만 일 할 사람들을 찾는다고 합니다.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없고, 또 3개월에서 6개월을 일한다고 해도 정해진 임금을 보장받기는 어렵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많이 체불 임금과 퇴직금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가톨릭근로자회관을 많이 찾고 있습니다. 정당한 노동을 하고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보면 딱한 마음이 듭니다. 월급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하면 한국에서 자신의 생활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본국의 가족들까지도 생계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주 노동자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들이 일하는 공장에 전화를 해보면 공장의 사업주(사장)들 역시도 딱한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경우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는 공장들도 영세업체들이 많고, 부도 위기에 있는 공장도 많습니다. 그런 공장의 사업주들은 저희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본인도 너무 힘들다고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저희는 이주 노동자들을 설득합니다. 사장님도 힘들고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퇴직금 금액이 큰 경우에는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에서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도록 중재를 해주기도 합니다. 이와 반대로 이주 노동자들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사장님들도 있습니다. 미등록 체류자(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정해진 시급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월급 명세서조차 발급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 주 전, 필리핀 여성 이주 노동자 3명이 회관을 찾았습니다. 미등록 체류자(불법 체류자)로 한 공장에서 10년 가까이 일을 했는데 사장님의 폭언도 심하고, 정해진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아서 공장을 옮겼는데 그 달치 월급과 퇴직금을 주지 않는다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공장에 전화해서 그 달치 월급에 대해서 물어보니, 그 달에 불량품이 많아서 월급에서 불량품을 변재하고 그달치 월급을 주겠다고 하고, 퇴직금은 얼마인지도 모르고 줄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매달 월급도 어떠한 기준도 없이 불규칙적이어서 작업 시간을 추정해서 퇴직금을 계산해보니 10년치 퇴직금이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사장님과 통화를 해보니, 그 금액은 절대 줄 수 없다고 하면서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을 제시했습니다. 필리핀 여성 이주 노동자들은 사장님이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10년 동안 그래도 참고 일을 했는데 참 속상하다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해결이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법적으로 소송을 하거나 진정을 넣기 전에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합의를 보려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이주 노동자들은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공장을 이전하거나 또는 근무 시간을 조정하고 휴일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한국인 직원들이 기피하는 시간에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고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거나 힘든 경우 이주 노동자들을 우선적으로 해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주 노동자들을 상담하면서 가장 안타깝고 힘든 경우가 바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인 사장님들의 태도입니다. 때로는 저희 가톨릭근로자회관에 전화를 해서 한국 사람이 도대체 왜 그러냐고 따지기도 하고, 때로는 그보다 심한 폭언을 일삼기도 합니다. 항상 이주 노동자들과 사장님, 이주민들과 선주민인 한국인들 경계에 서 있는 것이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참 애매하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이주민들도 어렵고 회사도 어려운 경우에는 회사의 입장도 대변해주어야 하고, 또 이주민들의 상황이 어려울 때는 이주민들의 입장도 대변해주어야 합니다.

이주 노동자들의 처우나 권리가 예전보다는 많이 향상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한 경우도 많고 또 보완되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이주민들에 대한 배려나 혜택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정의와 공정이 충만한 차별과 편견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