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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사무직원회 성지순례기
은혜로웠던 중국 상하이 성지순례


글 이경재 데레사 | 산격성당 사무장

  

○ 4월 24일(월). 주문모 신부님 살았던 동네를 찾아서…

대구대교구 사무직원 81명이 중국(상하이)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순례 여정의 첫 집합 시간은 꼭두새벽 4시. 김해공항으로 가는 길에 잠을 설친 탓에 나뿐만 아니라 일행 모두는 묵주기도 5단을 겨우 끝내기가 무섭게 모두 꿈나라로 깊이 빠져 들었다. 김해공항을 출발하여 푸동공항에 4시간여 만에 도착해서 2시간 30분간 버스를 타고 첫 순례지인 소주에 도착했다. 넓고 넓은 중국을 실감! 이동거리가 버스로 보통 한두 시간 이상이다.

소주에서 400년이 넘은 높이 48미터 무게 600톤이라는 호구탑(후치우탑)관광 후, 곤산으로 이동하여 주문모 신부가 다녔던 소신학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소주교구 주교좌성당(양가교성당)을 순례하고 다음으로 주문모 신부님의 출생지에 있는 소횡당성당에 갔는데 여기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사무직원회 담당 겸 이번 순례의 인솔을 맡은 교구 사무처장 이종건(시메온) 신부님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 참배를 한 다음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의 생가터를 찾아갔는데, 요즘 젊은 아이들이 하는 말로 ‘헐~’이었다. 주문모 신부님의 생가터라 하여 우리나라 성지처럼 잘 꾸며(?)져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삼사층 콘크리트 빌라가 들어서 있을 뿐 주문모 신부님을 추모할 수 있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로 교회역사를 언급할 때마다 등장하기에 칭송하며 흠모하는 주문모 신부님이시건만, 뭔지 모를 안타까움에 착잡하였다.

 

○ 4월 25일(화), 김대건 신부님 첫 미사 봉헌 성당에서 우리도 미사를…

중국에서의 둘째 날에는 ‘상하이의 베니스’ 수향마을 주가각에서 기념품과 공예품을 파는 가게를 구경하고 나룻배를 탔다. 수로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가옥들과 홍등이 걸려있는 찻집의 운치를 즐기는 동안 나룻배는 주가각의 중심인 방생교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뱃놀이를 마치고 예수승천성당 순례 후 송강구로 이동하여 한국의 첫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첫 미사를 봉헌한 횡당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 참례하는 내내 마음이 찡하였다. 15세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마카오로 만주로 상해로 갖가지 시련을 다 견뎌내시고 서품을 받고 첫 미사를 드리신 이곳에서 내가 지금 미사에 참례하고 있음이 큰 감격이었다. 성전 제대 한쪽에

는 김대건 신부 동상이 있고 또 다른 한쪽에는 예수님을 안고 계시는 한복 입은 성모상이 있다. 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 현양위원회에서 기증하여 이곳 성당 제대 양쪽에 나란히 봉헌되었다고 한다.

이동 경로가 긴 일정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어둠이 내리고 버스 창밖의화려한 상하이 야경이 장관이었다.

 

○ 4월 26일(수). 우리 교구 신부님을 만나서 기뻤던 날…

 순례 3일째, 이날은 어제에 이어서 성 김대건 신부님께서 서품을 받으신 김가항성당에 갔었다. 원래의 김가항성당은 2001년에 신도시 개발로 철거되고 약 1km거리에 옮겨왔다고 하는데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아쉽게도 성전보수공사 중이어서 옆쪽에 임시로 마련된 가건물에서 미사를 드렸다. 여기에서 우리 교구 신부님을 만났다. 대구대교구 신부님 두 분께서 이곳 상하이에서 사목을 하고 계셨는데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셨고 함께 미사도 드렸다. 미사 중 그곳에 계신 신부님께서 인사 말씀 중에 “나는 어른이 되어 사제로 이곳에 와서도 힘겨울 때 집 생각나고 고국으로 빨리 가고 싶은데, 17세의 어린 소년이 이곳 상하이에서 신학생 시절을 보내는 동안 얼마나 집이 그립고 고향 생각이 간절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래서 집 생각을 내려놓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에 깊은 공감이 갔다. 얼마나 고독하셨을까! 동행한 담당 신부님께서는 강론 중에 당신이 서품 받을 당시의 상황과 감동과 다짐을 들려주셨다. 김가항성당은 한국 사제들에게 참으로 의미가 큰 성당인 듯하다.

두 분 신부님께서는 우리가 좋아하는 치맥을 들고 숙소를 방문하여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날 밤을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고, 우리들 역시 신부님들께 건강히 잘 지내시고 다음에 고국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 4월 27일(목). 중요한 것을 챙기며 살기로…

여정의 마지막 날, 아침 7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푸동공항으로 이동하여 일상에로 돌아왔다. 챙겨간 짐을 풀고 순례 여정을 되짚어 보니 틈틈이 관광도 했었다. 마시청 서커스 관람도 하고 아시아 최대 높이의 건축물로 유명한 상하이 동방명주에도 갔었다. 높이가 468m라고 한다. 특수 유리 바닥이 있는 곳에서는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선뜻 나서기가 겁이 나기도 했지만 창밖 전망과 더불어 훤히 뚫린 발밑으로 아주 높은 건물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아찔함도 만끽했다. 이렇게 이번 순례는 한국 가톨릭 신앙인에게 의미 가득한 성지도 순례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도 둘러본 보람된 여정이었다. 다만 윤봉길 의사 기념관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못 들리고 온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성지순례 미사 봉헌 때 사무처장 신부님의 강론 중에 사무직원들이 모두 무척 바쁘고 그 바쁜 와중에 많은 일들을 척척 처리해내는 능력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시며 당부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사무직원들이 바쁜 일은 다 잘 처리하는데 정작 중요한 일은 놓치고 산다.”며 “중요한 일이 무엇이지 챙기면서 살라.”고 하셨고 또 “기도하고 일하라.”고 하셨다. 사무장이기 전에 신앙인임을 잊지 말라는 당부셨다.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챙기고, 주님 안에서 기도하며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기! 이번 순례에서의 다짐이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들었다. 본당 사무직원 담당 사제이신 사무처장 이종건 신부님과 동료 사무직원들과 함께한 ‘상하이 성지순례’는 참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과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며 같은 감동을 받고, 서로를 배려하고 나누고 함께 웃고 즐긴 3박 4일의 여운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끝으로 이번 성지순례를 위해 서너 달 전부터 준비한 사무직원 본회 간부들의 수고에 감사드리고 해외성지순례를 허락해 주신 교구장님과 동행하신 사무처장 신부님, 그리고 성지순례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배려해주신 본당 주임신부님께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