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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 가족찾기 프로젝트
미국 입양인 캐서린 러스틱(Kathryn Lustig, 한국이름 : 오해숙)


글 김 데레사 수녀 |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수녀원이 시작된 1915년 이래 백백합보육원을 거쳐 입양된 수많은 해외입양인들이 성장하여 자신의 친가족을 찾기 위해 모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수차례 해외입양인들이 감동적인 친가족상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해주신 잡지 형제자매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아직도 상봉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미국 입양인 캐서린 오해숙 러스틱(Kathryn Oh Hae Sook Lustig) 씨가 해외로 입양된 지 40여 년 만에 백백합보육원출신 해외입양인 모국방문단과 함께 친부모와 가족을 찾기 위해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을 찾아왔다.

 이 분에 관해서 특별한 기억이 있다. 그녀는 일행이 잠들어 있는 새벽에 수녀원 미사에 왔고 아기 때 그녀를 돌본 수녀들과 해후 할 수 있었다. 성당 앞 홀에서 어머니라도 만난 듯 수녀들을 부둥켜안고 우는데 이를 바라보는 수녀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보육원 서류에 의하면 러스틱 씨는 1972년 4월 23일에 태어났다. 태어난 지 하루만에 당시 덕산파출소(현 남산지구대) 앞에서 발견되었다. 발견된 바로 그날 새벽 1시 30분 파출소에 근무 중이던 정모 경위로부터 백백합보육원(현 백합어린이집)에 맡겨졌다. 보육원에서는 ‘오해숙’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생년월일도 추정에 의한 것이다. 보육원 홍방(당시 신생아부터 6개월 아기가 머물던 방)에서 3개월여 보살핌을 받은 그녀는 같은 해 10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의 한 가정에 입양되었다.

 러스틱 씨를 입양하던 날 온가족이 크게 환영하며 기쁨을 나누었다고 한다. 양부모에게는 세 살짜리 친딸이 있었는데 러스틱 씨와 함께 두 자매를 아낌없는 사랑과 정성으로 키웠다. 그 후 양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가족들은 오마하에서 인디애나로, 그리고 캘리포니아 등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러스틱 씨는 지금 인디애나에 살면서 카멜시 엔지니어링부에서 오피스 관리 일을 하고 있다.

 “제가 태어났던 곳에 가보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제가 힘든 인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픔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 아픔은 제 친엄마와 이별을 한 것, 또 그 이후에도 제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이 하나씩 저를 떠난 것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33세에 엄마가 됐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딸을 낳은 후 저는 몇 달을 울었습니다. 제 친엄마도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제가 느꼈던 감정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머니가 되면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어머니의 부재가 더 크게 느껴지나 보다.

 “그리운 어머니, 어디 계세요? 어머니가 보고 싶어 한국을 찾아 왔어요. 어쩔 수 없이 저를 포기해야 했을 어머니를 절대 원망하지 않아요.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입양된 남자친구도 만났고 예쁜 딸도 낳았습니다. 저의 입양서류에 ‘부드럽고 따뜻한 아이… 성질이 약간 급하고 재미있으며 가끔 웃는다.’라고 묘사되어 있는 저의 성격은 어머니를 닮았나요? 어머니, 당신이 너무 보고 싶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요. 어디에 계시든 부디 행복하게 살아오셨기를 바랍니다. 꼭 연락주세요. 사랑해요.”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백백합보육원 입양인 지원 T. 053-659-3333

김 데레사 수녀 : spct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