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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마지막 축복(Last Blessing)”


글 이관홍 바오로 신부 | 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

 

 필리핀 이주민들은 유난히 ‘축복(Blessing)’을 자주 청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감사의 축복을 청하고, 몸이 아프거나 힘든 일이 생겼을 때에도 축복을 청하며 안수를 해달라고 합니다. 좋은 일이면 함께 기뻐하고 슬프고 힘든 일이면 함께 기도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몇 달 사이 참 가슴 아픈 축복을 해준 적이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필리핀 이주민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축복이었습니다. 필리핀 여성 M씨는 대학 강사로 대구 근교의 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3년 전에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한국에서 남편과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3년 전 백혈병에 걸렸을 때 저에게 축복을 청해서 병자성사를 준 적이 있었습니다. 몇 달 전 M씨는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남편 C씨는 저에게 병자성사와 가족들을 위한 축복을 청했습니다. 저는 급히 달려가서 혼수상태에 있던 M씨에게 병자성사를 주고 가족들을 안수해주며 강복을 해주었습니다.

며칠 뒤, 남편 C씨에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부인이 위독하다며 저에게 마지막 축복을 청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바로 가겠다며 전화를 끊고 급히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임종을 돕는 기도를 함께 바치고 마지막으로 강복과 안수를 해주었습니다. 물론 가족들에게도 힘을 내라고 말하며 안수를 해주었습니다. 가족들은 병원 구내식당으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고 저는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중환자실에서 곧 임종을 할 것 같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구내식당으로 가서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중환자실로 향했습니다. M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주변에서는 임종이 임박했다는 경고음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금 M씨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짧은 기도를 바쳤습니다. 기도를 마칠 무렵 M씨는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들이 필리핀에서 장례 미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저희 가톨릭근로자회관 직원들이 그 절차를 도와주었습니다. 합법 체류자였고, 여러 가지 보험 혜택들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신을 필리핀으로 모셔가기 전 가족들은 다시 저에게 강복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영안실에서 사도 예절을 거행했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가슴 아픈 이별입니다. 타국 땅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가족들이나 지켜보는 사람에게나 똑같이 슬프고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M씨의 일이 마무리되고 가족들이 모두 필리핀으로 돌아가고 난 뒤, 다른 필리핀 부부가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저희 근로자회관을 찾아서 축복을 청했습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한국에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법 체류자 부부였습니다. 늦은 나이에 아기를 가졌는데 그만 아기가 사산된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엄마 뱃속에서 죽어간 아기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비록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었지만 아기의 부모는 아기의 시신에 성수라도 뿌려달라고 했습니다. 부부와 함께 영안실로 들어가니 아기의 시신이 작은 종이상자에 담겨있었습니다. 아기의 시신이 담긴 종이상자를 보고 있으니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성경 구절을 읽고 성수를 뿌릴 때 아기의 부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산된 아기는 화장을 해서 자신들의 집에 보관하겠다고 했습니다. 아기의 아빠는 그동안 여러 가지 핑계로 미사에 참례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아기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라도 미사에 빠지지 않겠다는 결심도 저에게 전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축복(Blessing)’이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 고통과 아픔이 담겨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삶의 어려운 순간,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은 물론이고 기쁜 순간에도 하느님을 찾고 의지한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을 보여줍니다. 특히나 이주민으로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축복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주일마다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청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주일을 보내고 난 뒤,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역시 저의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