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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 111곳 성지순례』, 그 길 위에서
하느님, 당신 뜻대로 살도록 하소서 (8화)


글 김윤자 안젤라 | 남산성당

2016년 9월 19일 월요일 - 출발할 때는 약간의 비가 내리다가 오후부터는 날씨가 너무 맑고 쾌청한 날

오늘은 1박 2일의 여정으로 대전교구 성지순례를 위해 새벽 6시에 서둘러 길을 떠나 충청남도 예산 여사울1) 성지로 향했다. 날씨가 얼마나 좋던지 여사울 성지로 가는 길은 호젓하면서도 풍요로웠다. 우리 일행은 여사울 성지에서 기도를 드리고 잠시 머문 뒤 당진 신리2) 성지로 향했다. 이번에 두 번째로 가는 성지인데, 거대하고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을 하며 성지 곳곳을 돌아보고 새삼 순교자들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순례할 수 있다는 기쁨을 느낀 성지였다. 신리 성지를 벗어난 우리는 합덕 성당3)으로 향했다. 성당이 꼭 예수님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기도와 성체조배를 하고 내려오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성당 전경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차를 달려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 터가 있는 솔뫼4) 성지로 향했다. 2014년 8월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다녀가셔서 그런지 성지로 향하는 도로가 말끔했다. 성지 입구에서 교황님과 김대건 신부님이 반겨주시는 듯 즐거운 기분으로 성지에 들러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도 드리고 행복한 순례도 할 수 있었다.

 다음 순례지는 원머리(신평 원머리)5) 성지. 편안한 시골길을 따라 그저 시골 한 귀퉁이에 모셔진 조용한 우리네 조상의 산소와 같은 성지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지난번 너무 늦은 시간에 들러야 했던 공세리 성당에 미련이 남아서 다시 공세리 성당6) 을 찾았다. 낮에 본 공세리 성당은 늦은 시간에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그 느낌을 가슴에 안고 돌아오는 길에 예산 배나드리7) 성지로 향했다. 배나드리 성지는 인언민(마르티노) 순교자의 사적지이다. 성지가 그렇게 호젓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순례기도를 마치고 스탬프를 찍기 위해 삽교 성당으로 향하니, 성당 입구에 ‘삽다리 천주교회’라는 옛 이름이 우리 가슴에 아련하게 와 닿았다.

다시 차를 달려 우리는 서산 해미 순교성지8)로 향했다. 해미 순교성지는 대한민국 신자라면 거의 한 번은 가봄직한 성지일 것이다. “특히 이곳은 생매장 순교지로 교수형,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의 형벌과 더불어 돌다리 위에서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돌에 메어치는 자리개질이 고안되기도 했고, 여러 명을 눕혀 놓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인”(74쪽 참조) 곳이다. 너무나 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순교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유난히 가슴 아팠던 해미 순교성지를 벗어나 충남 홍성 홍주(홍성) 순교성지9)로 향했다. 홍주 순교성지에 도착하니 성지 입구에는 차를 세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스탬프 찍을 성당조차 세를 들어 사는 곳이라고 해서 정말 당황스러웠고, 너무 어려운 성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어떻게든 전 신자들이 나서서 좀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청양 다락골(새 터, 줄무덤)10) 성지로 향하는 길은 무척 풍요로웠고 성지에 도착하니 저녁 무렵의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 눈으로 가득 들어왔다. 산을 오르는 동안 산속에 있는 무명 순교자들의 뜻을 기리면서 37기의 무명 순교자들을 향해 기도를 드리고 내려와서 성지 성당 앞마당에서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순례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성지담당 이의철(가밀로) 신부님께서 들어오시다가 우리 일행을 보고 어찌나 반겨주시던지 잔잔한 감동이 번지는 시간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자고 권했더니 저녁을 막 드시고 오시는 길이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우리에게 강복도 주셨다. 참으로 행복한 순례의 마지막 성지에서 아름다운 사제까지 만나 더 행복한 마음을 안고 갈매못 순교성지로 발길을 돌렸다. 초행길인 데다 이미 어둠이 깔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1박 2일 일정의 첫날, 성지 가까운 곳까지 가서 오늘의 여장을 풀기로 하고 계속 달렸다. 시골의 밤길은 얼마나 컴컴하던지 도무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일단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도로를 따라 순례를 다니는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옛 순교자들께서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잠을 청했다.

 

16회차 : 여사울 성지→신리 성지→합덕성당→솔뫼 성지→공세리 성당→원머리 성지→베나드리 성지→해미 순교성지→홍주(홍성) 순교성지→청양 다락골(새터, 줄무덤)→갈매못 순교성지

 

2016년 9월 20일 화요일 - 하루 종일 맑고 쾌청한 날

아침 8시 갈매못 성지 부근에서 출발하여 충남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11)에 도착을 하니 이른 아침인데도 성지에는 수녀님과 다른 분들도 계셨다. “진산 성지는 한국천주교회 최초로 피의 증거자가 태어난 계기가 된 진산 사건이 일어난 곳”(70쪽 참조)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너무나 끔찍한 사진들과 순교 장면의 그림들을 보며 가슴 아픈 마음으로 기도를 드려야 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한국천주교회 111곳 성지의 마지막 순례지인 금산 진산 성지로 향했다. 진산12) 성지도 두 번째로 다시 가는 성지였는데 가는 날이 화요일이었는데도 너무나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여 깜짝 놀랐다. 우리는 진산 성지가 111곳 성지의 마지막 순례지인 만큼 그동안 아무 탈 없이 순례를 잘 마칠 수 있도록 함께해주신 좋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점심도 신청해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미사가 끝난 뒤에는 진산 성지 담당 신부님께서 우리 일행에게 축하도 해주시고 함께 기념촬영까지 해주셔서 너무나 행복했다.

“참으로 좋으신 하느님! 17일간의 성지순례 대장정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5월 성모님의 달 성모 성월이었는데 끝나는 시점인 지금은 9월 순교자 성월이고 오늘은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이렇게 순교자 성월에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리며 지낼 수 있어 정말로 행복하고 감사드립니다. 순례 중에 가끔은 함께하신 어르신들께 버릇없이 굴기도 했지만 이런 저를 믿고 아껴주신 세 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허락하신다면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더 갈 수 있는 그런 바람도 가져봅니다. 하지만 지금 이것만으로도 만족, 대만족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 ‘내 모든 삶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17회차 : 갈매못 순교성지→진산 성지

 

1)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64, 『한국천주교 성지순례』 참조

2)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62

3)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72

4)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58

5)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66

6)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46

7)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52

8)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74

9)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76

10)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50

11)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44

12) 대전교구 소속의 성지. p.70

 

* “『한국천주교회 111곳 성지순례』, 그 길 위에서”는 이번 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연재를 맡아주신 김윤자 님과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