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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감사하기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카리타스복지교육센터 소장

  

2003년 미국 미시건대학에서 5년에 걸쳐 장수 부부 423쌍의 장수 비결을 찾기 위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들 대부분은 정기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방문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지속되는 심리적 포만감을 의미하는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를 경험한다고 했다. 헬퍼스 하이를 경험하는 동안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감소하고 엔도르핀은 정상치의 3배 이상이 나온다며,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한다고 발표했다. 또 1988년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은 대가를 받고 타인을 위해 일하는 그룹과 대가 없이 같은 일을 하는 그룹 사이의 비교 연구에서 대가 없이 이웃을 도운 그룹에서만 침 속에 있는 면역항체인 Ig A 수치가 월등하게 높아지는 현상을 관찰했다. 직접 선행을 하거나 다른 사람이 선행을 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해도 몸의 면역력이 높아지는 이러한 효과를 ‘데레사 효과(The Mother Theresa Effect)’라고 이름 붙였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돕는 사람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의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그들은 신체적, 심리적 변화뿐만 아니라 영적인 변화도 체험한다. 16년 전 본당사회복지 실태조사를 위해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70대 할머니 한 분도 그 변화를 증언해주셨다. 그분은 본당에서 이웃을 방문해 밑반찬을 전달하거나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계셨다. 도움 받는 분의 만족할 줄 모르는 물질적 도움 요청, 그분 가족의 무관심 등 이웃을 돕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하시던 중에 그분께서 “그 사람을 쳐다 봄으로써 어떨 때 느끼는 게 있어요. ‘저 사람이 예수님인가?’ 싶은 생각도 있고. 그런 생각 없으마 영영 못해예.”라고 말씀하셨다. 동시에 항상 그런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이셨다. 인터뷰를 마치고 시내 중심가에 볼 일이 있다는 그 어르신과 함께 택시를 타고 오면서 그런 마음이 들 때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고맙지. 고마운 거지.”라고 대답하셨다. 그분은 당신이 스스로 실천하고 있는 교회 사회복지 실천의 핵심을 우리에게 들려주셨다.

 “가톨릭다운 사회복지실천이 일반 사회복지 조직의 실천과 다른 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아니, 어떤 점이 달라야 합니까?” 교육에 참석한 동료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다. 한 마디로 분명한 대답을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늘 대답하기 어렵다. 이 물음은 어떤 이론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의 차이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차이는 미묘한 경우가 많고, 질문하는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실천을 돌아볼 때 적용하는 몇 가지 기준을 질문으로 바꾸어 제시하고 질문한 분이 스스로 돌아보시기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 좀 전에 이야기한 그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고 난 다음부터 질문목록에 하나가 더 늘었다. 그 질문은 “당사자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돕고 동반하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까? 자신에게, 상대방에게, 그리고 예수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것이다. 이렇게 대답할 때마다 속으로 “나부터 이 기준을 잊지 말고 살아봐야지!”하며 결심한다. 이미 손에 넣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추구해가야 할 과제라는 뜻이다.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39항) 사랑실천은 먼저 다른 사람이나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받은 사랑을 체험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잘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받은 사랑을 발견하고 그 고마움을 간직할 뿐 아니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곧 받은 사람에, 그 사랑에 힘입어 이웃을 도울 힘을 가진 자신에게 감사하는 사람이다. 또 이웃을 잘 도우는 사람은 도움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돕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 함께 이루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때문에 도움의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사람이다.

끝으로 다른 사람을 잘 돕는 사람은 돕기 위한 만남 자체가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우친 사람이다. 그 만남을 통해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이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문제를 대하는 우리 태도의 변화, 곧 혼자가 아니라 함께 그 문제에 맞부딪쳐 나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내야 한다는 강박과 그에 따라오는 좌절과 체념의 덫을 빠져나올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어제까지 가진 모든 만남과 다가올 만남을 기쁘게 맞을 수 있고, 우리 일이 이미 받은 사랑의 증언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