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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노년을 아름답게


글 김형락 스테파노|가창성당

 

11월은 위령 성월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2)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 성월, 가톨릭교회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새로운 여정의 시작임을 일깨웁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자신의 궁극적 운명을 결정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의 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는 관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늙기는 쉽지만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라는 말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늙기도 어렵거니와 아름답게 늙는다는 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할 몫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아름답게 늙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아름답게 늙으면 그 삶의 질은 윤택해지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주 좋습니다.

노년의 가장 큰 적은 ‘무료함’입니다. 자기 것, 자기 세계가 없으면 더 빨리 늙고 소모되는 게 노년기일지도 모릅니다. 가까운 친구는 하나 둘 떠나가고, 이웃도 친척도 어느 순간 점점 멀어져갑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문제는 아마 ‘소외감’일 것입니다. 자식들도 점점 멀어지고 관계 또한 점점 소원해지는 것은 아닌지요? 노년이 되면 흔히들 자식에게 기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식에게 받은 상처나 배신감은 쉽게 치유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부모를 만족시키는 자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노년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요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노년의 아름다움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것은 마음먹기에 달렸고 마음의 자세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처럼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고 또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노년의 아름다움을 세운다는 것은 결국 품위 있는 노인이 되는 것입니다. 품위는 존경받는 인격적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접 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인품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지요. 또 늙으면 말수를 줄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말수를 줄이는 대신 지갑을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아무 때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불쑥 나서서 말을 하거나 소리치는 늙은이가 되지 않게 기도해야겠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름다운 노년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위령 성월을 지내며 ‘노년의 아름다움’을 가꿔가는 노인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