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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을 하며
거절과 거부는 또 다른 관심의 모습


글 이태우 프란치스코 신부 | 교구 병원사목부 부장

 

병원사목의 경험에 대한 글을 시작하면서…

안녕하십니까? 저는 병원사목 소임을 하고 있는 이태우 신부입니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위기에 처한 영혼 돌봄에 관해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배우는 여정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아울러 저와 함께 원목 소임을 하고 있는 동료 사제들의 글도 함께 나눌까 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환우들의 이야기는 사생활 존중을 위해 익명으로 표기하였음을 미리 밝혀드리고 양해를 구합니다.)

필자는 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와의 만남을 통해 원목 사제로서 배우고 얻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환우들과 보호자들께서 말씀하시는 고통의 여정이 때로는 가슴 아프게, 때로는 안타깝게 다가오면서 지금의 제 삶에 대한 성찰과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을 체감하는 은혜로운 여정임을 알게 합니다.

투병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의 삶은 그 자체로 아픔이고 힘겨운 나날들이지만 그분들과 함께 아파하시고 고통을 겪고 계시는 하느님을 대면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가끔씩 환우나 보호자 중에 고통의 여정이 너무나 힘겨워 거부나 거절의 모습을 강하게 드러내는 경우를 만나곤 합니다.

 

평소에 건강하고 성실하게 본당에서 봉사하며 살던 가운데 갑작스런 질병으로 뇌에 이상이 생겨 몇 마디 말만 반복하던 A씨와 그것을 지켜보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친동생인 보호자 B씨와의 만남이 떠오릅니다.

어느 날 제가 A씨와 B씨가 머물고 있는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동생인 보호자 B씨가 “우리 언니가 어떻게 살았는데 이럴 수가 있나? 성당에서 봉사와 선행으로 하느님을 믿고 정말 착하게 살았는데… 하느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언니를 이렇게 만들 수 있나? 하느님도 신부님도 다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라!”며 노기 띤 얼굴로 소리치며 거부하였습니다. 순간 당혹스러운 마음이 생겼지만 곧바로 보호자의 모습에 집중을 하고 “자매님 말씀을 들으니 저도 화가 나네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자매님, 혹시라도 자매님이 기댈 언덕이 필요하시면 저를 불러 주십시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하고 병실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에 병원을 찾으니 수녀님께서 지난주에 만났던 환자의 보호자가 저를 찾는다고 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보호자를 만났는데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고해성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성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이 보호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환자나 보호자들이 강한 거부와 거절의 모습을 보일 때, 단순히 드러난 모습보다는 숨은 아픔을 읽어내고 머물러 주는 사목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과 더불어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훌륭한 훈화나 훈계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와 마음을 깊이 들어주고 공감하는 부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환자나 보호자와의 만남에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점은 환자나 보호자가 어제와 다른 모습(예를 들면, 갑자기 화를 내거나 눈물을 보이며 울고 있거나)을 보인다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하기보다 힘든 여정 중에 있다고 여기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적절한 돌봄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환자나 보호자뿐 아니라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의 변화를 겪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물며 ‘힘겨운 병상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고 생각해보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의 삶에 대해서, 그 사람이 살아온 수많은 우여곡절과 아픔과 한이 담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삶을 단순히 몇 장면의 모습만 가지고 판단하고 단정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위기에 처한 한 영혼의 상태는 어떨까를 공감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추측할 뿐입니다.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영혼의 아픔에 늘 함께하시고자 우리를 대신 보내셨습니다. 때로는 거절과 거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반응하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우리가 사랑과 관심으로 다가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지금 위기에 처한 수많은 영혼을 돌보기 위해 쓰여 질 하느님의 사랑의 도구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 이번 호부터 병원사목을 하며가 여러분 곁을 찾아갑니다. 이태우 신부님은 교구 병원사목부 부장으로 대구대교구 C.P.E 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많은 애독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