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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오 디비나 영성 수련기 1
말씀, 그리고 하느님 사랑


글 윤여홍 시몬 |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대학원 2학년

 

찬미 예수님!

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에 재학 중인 윤여홍 시몬 신학생입니다. 저는 이번 겨울 방학 동안 한 달간의 영성 수련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에 말씀 안에서 느끼고 깨닫게 된 하느님 체험에 관하여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영성 수련을 들어가기 전 선배 신학생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이 하느님을 많이 체험하는 좋은 시간이 될 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과연 선배들이 체험한 것처럼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또한 신학생으로서, 더 나아가 사제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습니다.

영성 수련의 첫 주간은 매우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롯이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외부의 일들에 신경 쓰지 않고 말씀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첫 주가 지나자 서서히 영적 고독(孤獨)의 상태가 찾아 왔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하느님 안에 머무르려 노력해보아도 아무런 의미나 감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잘되던 묵상이 갑작스럽게 되지 않으니 걱정도 되고, 어느 순간에는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심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영성 수련 첫날 동반(同伴) 신부님께 들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이후 욕심을 버리고 십자가 앞에 앉아 있어 보려 노력하였습니다. 몇 시간이고 그저 앉아서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며 자신의 욕심을 비워 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조급함과 답답함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편해지고 말씀의 의미를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욕심이 생길 때마다 마음을 비우고 다시 시작하도록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 것 같습니다.

영성 수련을 통해 가장 많이 느끼게 된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그분의 사랑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시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죽는 순간까지 당신을 미워하는 이들을 위해 침묵하시며 “다 이루어졌다.”라는 한마디 말씀을 하시고자 갖은 모욕과 조롱, 비웃음, 그리고 치욕스러운 옷 벗김까지 당하셨습니다. 이러한 그분의 헌신과 사랑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십자가의 길을 하며 예수님의 수난에 함께하면서 수없이 넘어지고 매맞으시며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시는 그분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죄인이 된 것처럼 그분을 바라보기가 죄송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셨음을 느낄 때면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요한 복음 21장 15~19절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고백하는 장면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당신을 세 번 부인(否認)한 베드로의 마음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시고, 양들을 돌볼 사명을 맡겨주시는 장면을 묵상하면서 저의 부족함까지 채워 당신 도구로 쓰시고자 하시는 그분의 섭리(攝理)와 사랑에 말 못할 뭉클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보니 저라는 존재가 참으로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고 메말라 있을 때도 그분께서는 항상 제 곁에 현존하시며 성령을 통하여 저의 메마름을 해소해주고 계셨음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느껴질 수 있는 한 달간의 영성 수련을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에 내어 맡김, 그리고 많은 고민들이 큰 의미가 없었음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하려고 노력할 때, 그리고 하느님 말씀이 진정한 영적 생명임을 잊지 않을 때 비로소 모든 어려움과 고민이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영성 수련을 통하여 “신앙인은 말씀으로 살아간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신학생에게 말씀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영성 수련을 마치며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달 동안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과 말씀의 소중함, 그리고 성령께 내어 맡기는 삶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마도 일상생활로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지금의 이 마음이 해이해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가끔, 어쩌면 자주 말씀을 잊고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늘 저와 함께해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저를 이끌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