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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신앙
소소한 일상이 주는 가장 큰 행복(2)


글 남리나 카타리나 | 경산시어르신복지센터, 대곡성당

  

 매년 연말이 되면 경산시어르신복지센터에서는 어르신들이 일 년간 다양한 취미여가 강좌에서 배운 춤, 노래, 악기연주 등을 선보이는 종강공연발표회와 직접 쓰고 그린 서예, 동양화, 서양화 작품 등을 전시하는 작품전시회를 개최한다. 일 년간의 수업을 마무리하는 그날이 오면 어르신들은 그동안 배운 것들을 여러 사람들 앞에 선보이게 되는데 공연의상도 빌리고 화장도 짙게 하고 응원단의 플래 카드도 준비하면서 오랜 기간 동안 공연을 준비하신다. 출연하시는 분들도 구경하시는 분들도 서로 응원하고 격려해 주신다. 그동안은 평일 낮 시간대에 센터 안에 있는 100석 규모의 강당에서 개최했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공휴일로 날짜를 옮기고 외부의 큰 공연장을 빌려 행사를 개최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일 년간 열심히 준비한 공연을 우리 안에서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좀 더 많은 분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더 많은 분들이 함께 축하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600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을 빌려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친구, 가족까지도 초청할 수 있게 준비하였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유치원 학예발표회를 가게 된다. 열심히 연습하고 예쁘게 꾸며 무대 위에서 긴장해서 공연을 하는 아이를 볼 때면 집에서 철없는 모습과는 달리 의젓하고 낯선 모습에 기특하기도 하고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울컥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면서 자녀들의 그런 모은 볼 일이 많겠지만 부모님의 공연 모습은 잘 본 적도 없었고 볼 수 있는 기회도 없었던 것 같다. ‘혹시나 많이 오시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직원들의 우려와 달리 행사 당일 600석 규모의 강당은 빈 자리 없이 꽉 찼고, 어르신들 사이로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잔뜩 기대하는 표정의 자녀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 따라온 어린 손주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분들의 표정을 보니 기대감과 안쓰러움, 감동스런 만감이 교차해 보였다. 부모님이 나오는 순서에 무대 앞까지 나와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꽃다발을 전달하면서 화장을 짙게 하고,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은 부모님의 낯선 모습에 신기해했고 감동스러워했다. 그동안의 행사 때와는 다른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 할머니 최고!”라는 아이들의 응원소리로 행사장은 북적였고, 부모님의 모습을 담고자 무대 앞까지 나와 동영상 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르신들도 멀리 떨어져 있던 자식들과 손주들이 구경하고 있기에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보였다. 사물놀이, 라인댄스, 사교댄스, 하모니카 등 화려한 공연 사이에 한 공연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한 분이 평생 글을 모른 채 살아오시다가 센터의 한글교실에서 한글을 배우고 난 후 달라진 소감을 웅변처럼 발표하는 순서였다. 어르신은 마이크 앞에 서서 한글을 배운 후 생활에서 달라진 점을 즐거운 에피소드로 종이에 적어 오셔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 글의 내용은 어르신이 그동안 한글을 몰라서 서울에 사는 아들네 집에 오고갈 때 기차표와 행선지를 읽을 수 없어 오가는 게 힘들었다고 하셨다. 자녀들이 늘 기차 안까지 들어와 자리를 찾아주고 배웅을 하였고 혼자 가시는 어머니가 잘 도착하셨는지,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글을 배우고 난 후에는 열차 번호와 행선지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혼자서도 자신있게 기차에 올라 기차표에 적힌 좌석을 직접 찾아 앉았으며, 열차를 제대로 타셨는지 걱정이 된 아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그래, 내 자리 잘 찾아서 앉았다. 1호차 13번 창측”이라고 큰소리로 자랑을 하시니 기차 안에 다른 분들이 유쾌하게 웃었다는 내용이었다. 말씀하시는 내내 관람하시는 분들은 다 같이 웃으며 중간중간 응원의 박수도 치면서 마무리됐다. 발표하시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두 아들과 며느리는 무대 앞까지 나와서 어머니가 발표하시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장성한 두 아들은 촬영하는 내내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본인은 글도 모른 채 한평생 살아왔지만 자식들에게는 가난을 물려주기 싫어 두 아들을 박사까지 만들면서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한 어머니가 이제 뒤늦게나마 한글을 배워 즐겁게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니 죄송스러움과 고마움이 밀려왔던 것 같다. 펑펑 울고 있는 두 아들에게 사회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니, “뒤늦게나마 어머니가 한 발짝 한 발짝 꿈을 향해 걸어가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고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외부에서 행사를 진행하기에 더 많은 분들을 초청하고자 더 오랜 기간 전체 직원들은 고생을 한다. 30개 팀이나 되는 어르신 공연팀을 위해 전날 꼬박 리허설을 준비하고, 추운 12월 겨울 날씨에 100여 점이나 되는 큰 그림 작품들을 행사장까지 옮기기 위해 수차례 오가며 밤 12시까지 퇴근도 하지 못하고 작품 하나하나 못질을 해서 걸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덜 힘들게 다음에는 그냥 센터 내에서 할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가 끝난 후 수고했다는 말을 듣지 않더라도 이날을 계기로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어르신이 함께 모여 웃으면서 행복해 할 수 있는 하루를 선물할 수 있었던 이날의 소중함을 직원들 모두 느꼈을 것 같다. 한동안은 어르신의 자랑거리가 될 이날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센터에서 근무를 하면서 하루에도 수백 명씩 인생의 후반부를 달려가고 계신 어르신들을 만나 뵈면서 ‘노인’에 대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참 많이 달라지고 있다. 젊은이들보다 더 큰 열정과 아이들보다 더 순수한 감성, 인생의 큰 굴곡을 몇 번이나 견디며 지금까지 살아오셨을 지혜로움에 감탄하고 있다. 지금 나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것 같은 젊음, 건강, 가족, 친구,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고 익숙함에서 오는 소중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 경산시어르신복지센터(경산시 하양읍 소재)는 2015년에 개관한 노인복지관으로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다. 노인의 교양·취미 생활 및 사회참여 활동 등에 대한 각종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강증진 및 질병예방·재가복지 등 노인의 복지증진에 필요한 종합적인 노인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소득 구분 없이 만60세 이상 경산시 등록 거주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 자세한 문의 : 053-854-1666

 

* 좋은 글을 써 주신 남리나 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