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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이야기
어머니


글 장숙희 루시아 수녀 | 민족화해위원회,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임태주 시인의 어머니가 남긴 글 중의 일부입니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중략)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어머니! 우리 민족은 특별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집단 무의식으로 전해 내려오는 듯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은 탈북동포들도 같은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혼자 탈북한 동포들은 북한에 어머니가 남아 계신 경우 또는 자녀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녀와 그 자녀의 안위만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애끓는 심정이 이해되고 마음이 아픕니다.

나이가 좀 든 사람이라면 누군가 나직이 ‘어머니’하고 부르면 눈물이 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지고한 사랑과 희생으로 상징되는 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그 어머니께 그리 잘해 드린 것이 없는 자식의 회한 같은 것이 짙은 그리움으로 남아 한 번씩 가슴을 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구석구석 당신의 손이 필요한 곳에 어머니들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시겠지요. 우리 신앙인들이 성모님을 지극히 공경하는 심성 또한 이런 자녀들의 마음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수도자로 사는 저도 수도생활 초기에는 규칙이 엄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오랫동안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마치 멋진 수도자의 길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면을 청할 용기가 부족했고, 수도자가 뒤를 돌아본다고 하는 평가를 받는 것이 두려워서 택했던 비겁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달에는 어머니께 전화드려 ‘늘 보고 싶고, 많이 사랑합니다.’라고 말씀드리려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 성모 성월입니다. 성모님께 이 땅의 모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희의 부족함을 모두 아시는 사랑하올 어머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