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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신앙
“노래하는 체칠리아입니다.”


글 이정아 체칠리아 | 소프라노,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겸임교수

 

 얼마 전 받은 축하카드에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꽃길만 걸으세요.”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서 하는 일, 가장 행복해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편하고 즐거운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유학시절부터 시작된 불면증은 자연스레 무대공포증으로 이어졌고, 귀국을 해서도 온 힘을 다해 숨기고 있었지만 이 공포는 무대가 거듭될수록 더 큰 괴물이 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마다 내 목소리는 점점 망가져만 갔었다.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한 번 망가진 목소리는 회복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수술 당일 수술을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와 버렸다. 수술을 하더라도 노래하는 방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또 다시 문제는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절망과 희망을 오갔던 지난 2년간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살면서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 있다면 가장 절망적일 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맘을 주시는 것이라고 자주 말한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함께할 사람을 주신다.

테너 박인수 선생님과의 만남이 그렇다. 예술가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성악가로서의 능력을 키워주신 분이시다. 연주생활을 하며 매주 서울에 올라가서 공부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건강한 목소리로 나이도 잊고 꿈을 꾸며 지금도 노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도 내게 주어진 고통이 없었더라면 나는 절대 몰랐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조금씩 느끼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오페라를 노래하는 내게 성가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유학 때 이탈리아 밀라노한인성당 성가대에서 5년 가까이 활동했었다. 80여 명의 신자 중 40여 명의 성악전공자들로 구성된 성가대였으니 미사 때마다 성당을 가득 채우는 성가는 그 어디에서도 잘 들을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성가대를 통해 유럽 각지를 다니면서 만났던 신부님, 수녀님들과의 인연은 유학하는 내내 힘과 용기가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귀한 선물이다. 노래를 하면서 지휘를 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걸 시작하고 나니 알게 되었다. 나의 첫 지휘는 대학시절 성북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 어린이 성가대를 만들고 나서였다. 특히 독일 뷔르츠부르크 공소에서 15여 명의 신자 중 4명을 성가단원으로 구성해 두 달 동안 매일 연습해서 함께했던 7월의 어느 미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 나는 대구가톨릭남성합창단과 만촌1동성당 알마성가대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귀국 후 성가대 지휘를 한 지 올해로 15년째이다. 사실 지휘는 지금도 자신이 없다. 내가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가득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열정이 앞선 나머지 성가대의 본질을 잃어버릴 때도 있었고, 음악을 앞세워 교만한 적도 있었다. 결코 좋은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시간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성숙할 수 있던 계기가 된 것 같다. 음악적 테크닉이 성가대가 노래하는데 도움을 줄 순 있겠지만,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 오히려 단원들의 깊은 신앙과 순수한 찬양에서 배우기도 한다. 지치고 피곤한 얼굴로 성가연습에 와서 길고 힘든 연습에도 미소와 함께 열심히 찬양하는 모습에서 겸손과 최선의 자세를 배운다. 찬양을 통해 미사가 더 설레고, 일상이 더 기쁘다는 고백을 하느님께 할 때면 너무나 행복해진다. 나는 하느님께서 가장 훌륭한 지휘자라고 느낄 때가 많다. 특히 대축일 미사처럼 준비를 많이 한 미사에 임할 때면 나도 모르게 잘 하고 싶은 마음을 최선이라는 단어로 옷을 입히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다 내려놓고 내게 맡겨라.’ 그러면 어느덧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근사하고 아름다운 미사가 되는 경험을 자주하게 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정신으로 자유로움을 가지고 주님만 바라보는 은총을 미사 안에서 종종 느끼게 하신다. 성가대를 하다 보니 나의 일 년은 대림.성탄.사순.부활 순이고, 나의 한 주는 주일미사로 시작된다. 그래서 나에게 미사봉사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고, 나를 사랑하시는 한 부분이라고 믿는다. 성가대를 하기 전에는 미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지 못했다. 신부님, 신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정성들여 만들어 나가는 미사에 집중하다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아름다움으로 가슴이 벅찰 때가 많다. 매주 봉헌하는 미사인데도 할 때마다 새롭고 설렌다. 마치 하느님처럼 말이다. 내가 노래할 때, 또 함께 노래할 때 누구보다 기뻐하시고 사랑해주신다고 나는 믿는다. 좀 더 기쁘게 해드리고 싶고, 좀 더 사랑받고 싶은 욕심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아주 기쁘게 성당으로 향한다.

“내 애원의 소리를 들어주시니 나 주님을 사랑하네. 내게 당신의 귀를 기울이셨으니 내 한평생 그분을 부르리라.”(시편 116,1-2)

 

 

* 2회에 걸쳐 좋은 글 써주신 이정아 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