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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당 봉헌 100주년 기념 루르드문학미술제 문학부문 〈금상〉 신앙수기
한 사람


글 김재환 안드레아|성토마스성당

 

엄마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유는 아빠 때문이었다. 아빠는 의처증 증상이 있었고 엄마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를 원하셨다. 하루는 엄마가 목욕탕을 다녀온다며 집을 나섰는데 아빠는 엄마를 미행하였고 엄마가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목욕탕 앞에서 기다리셨던 적도 있었다. 아빠는 항상 엄마를 의심하고 구속하셨다. 의처증이 있었던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셨다. 술 없으면 살지 못할 만큼 매일 술을 드셨고 가끔 술을 드시지 않을 때도 있긴 있었다. 그런 아빠는 이중적이셨다. 술을 드시지 않을 때는 누구보다 다정하고 인자한 모습을 보이셨지만 술만 드시면 세상 모든 것을 비난하고 욕하셨다. 그 비난의 화살은 자주 엄마를 향했고 엄마의 마음이 찢어질 만큼 날카롭고 잔인하게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 내셨다.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우셨다. 아빠는 물건을 부수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하루는 엄마가 참다못해 아빠 앞에서 소주 한 병을 그대로 다 마셔버리고 기절하셨던 적도 있었다. 우리집은 매우 가난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나와 나, 이렇게 네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누나가 중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함께 생활하기 어려워졌고 누나는 외가에서 살아야 했을 만큼 우리집은 가난했다.

아빠는 몇 년 동안 외국에서 일을 하셨고 국내에서도 일을 하셨지만 매번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해고당하셨다. 당장 쌀을 살 돈도 부족했던 긴박한 상황에서 사회생활에 상처받은 아빠는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셨고 엄마가 일을 하러 나서야만 했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초조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엄마의 사정을 알고 계셨던 한 수녀님께서 엄마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셨고 그렇게 엄마는 초등학교에서 청소하는 일을 하게 되셨다.

엄마는 수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비질과 걸레질로 60만 원의 월급을 받으셨다. 그 돈으로 엄마는 먹을 것, 입을 것을 아껴가며 누나와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주셨고 아빠의 병원비도 충당하셨다. 엄마의 월급만으로 네 식구가 생활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우리 집안 사정을 잘 알고 계셨던 성당 사람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았다.

엄마의 고난은 주로 아빠 때문이었다. 그런 아빠와 엄마가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아빠가 가톨릭 신자라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던 아빠가 엄마에게 청혼을 했는데 엄마는 성가정을 이루겠다는 마음 하나로 아빠와 결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에 상처받고 쓰러진 아빠는 사랑의 결핍을 하느님이 아닌 엄마로 채우고자 했고 엄마를 아빠의 작은 세상에 가두려 했다. 그래서 아빠는 엄마가 성당을 가지 않고 집에만 있기를 바라셨는데 하느님 없이 살 수 없었던 엄마는 힘들수록 더욱 하느님만을 찾았다. 그래서 엄마가 성당에 다녀올 때면 아빠는 날카로운 비난으로 엄마의 마음을 찢어 놓곤 했다. 엄마는 성가정을 이루고자 아빠와 결혼을 결심했는데 아빠는 어느새 엄마에게 가장 위협적인 박해자가 되어 있었다.

삶이 고난이었던 엄마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엄마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엄마에게 한 번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고 항상 의젓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이려 했다. 하루는 아빠가 술에 취해 누워 계셨는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마귀가 창으로 나를 찌른다.”라고 하시며 고통을 호소하셨다. 엄마는 그 모습을 지켜본 내가 걱정되셨는지 “아들, 괜찮아?”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태연한 목소리로 “괜찮아, 아빠가 많이 괴로우셔서 그러신가 봐.”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두렵고 원망스러운 감정을 통제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아빠는 알코올성 치매와 간경화, 그리고 당뇨의 합병으로 돌아가셨다. 거친 파도가 예수님 말 한마디에 잠잠해진 것처럼 아빠가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에게도 여유라는 것이 생겼다. 그리고 10년 후, 내가 서른한 살이 되었을 때 나는 광야에 홀로 계셨던 예수님처럼 서울에서 홀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그곳에서 오로지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하느님께서는 나를 정화시켜 주시려 그곳으로 인도하신 것만 같았다.

정화의 시작은 그동안 외면하고 통제해 두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전혀 괜찮지 않았고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내 마음 깊은 곳에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쌓인 감정들을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엄마를 원망한다는 것은 내가 너무 못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거부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상태였고 하느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못난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보살피지 않았고 나를 귀찮아하신 것 같았다. 내가 축하받거나 격려 받아야 할 자리에도 엄마는 계시지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엄마는 내게 연락이 없었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방임을 느꼈다. 엄마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나의 친엄마가 아닌 걸까?’ 하는 생각까지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힘들었을 때 엄마가 나를 알아주지 못한 것만 같아서 서럽고 원망스러웠다. 사실은 내가 엄마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엄마가 알 수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원망스러웠다.

엄마에게 진솔하게 내 마음을 고백해보고 싶었다.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이 또한 하느님의 이끄심이라 믿고 나는 엄마에게 고백하였다. “엄마, 사실 그동안 너무 힘들었고 외로웠어.”라고 말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는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는 “엄마가 너무 약하고 부족해서 그랬어. 미안해.” 하시며 나를 안아주셨다. 그리고 엄마의 사정과 입장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오히려 나를 반성하게 됨으로써 엄마와 나는 화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는 “아들을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했습니다.”라며 눈물로 고해성사를 하셨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하느님의 은총은 계속되었다. 하루는 성당에서 미사 참례를 하고 있는데 신부님께서 성모 신심에 관한 내용으로 강론을 하셨다. ‘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고 말씀하신 내용이었다. 그 말씀을 듣고 ‘아니, 예수님께서는 왜 그렇게 성모님에게 매정하셨지?’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신부님께서는 그 말씀이 곧 성모님을 어머니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알려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고 성모 신심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셨는데 성모 신심은 하느님께 완전히 자기를 봉헌하고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정리해주셨다.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성모 신심에 대하여 묵상을 하는데 하느님께서 내게 ‘너의 엄마가 바로 너의 엄마다.’라고 이야기하시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내게 삶을 통해 성모 신심의 모범이 되어주셨다.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시고 미사에 참례하셨으며 고난의 삶 속에서도 오로지 하느님께 자기를 봉헌하고 순종하셨다. 30년 가까이 재속회 활동을 하시며 회장도 하셨는데 소심한 성격 탓에 몇 번이고 거절하려 하셨지만 하느님 뜻이라 믿고 순종하셨다. 현재는 양성책임자로 활동하시며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계신다. 그런 엄마의 신앙적 모범은 나의 신앙에 큰 기반이 되었다.

하루는 엄마에게 세 가지의 질문을 했다. “엄마는 스스로 엄마가 약하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힘든 삶을 견뎌낼 수 있었어?” 엄마가 대답하셨다. “하느님 없이는 못 살았지.” 나는 이어서 질문을 했다. “아빠가 원망스럽지는 않아?” 그러자 엄마는 “네 아빠는 너무 불쌍한 사람이야.”라고 대답하셨다. 엄마는 아빠를 용서하셨고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질문했다. “엄마는 하느님께 바라는 거 없어?” 그러자 엄마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았다.”라고 대답하셨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엄마가 이미 하느님께 모든 것을 다 받았으니 감사할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신앙의 모범이 되시는 엄마가 나의 엄마라는 것이 너무 감사했고, 엄마와 진솔하게 소통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하느님 은혜에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엄마를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또 한 번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그것은 바로 아들의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엄마를 그저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허락해 주신 것이다.

우연히 엄마의 앨범을 보게 되었는데 그 앨범에는 엄마의 전 생애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갓난아기였던 엄마의 모습과 지금의 표정을 그대로 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엄마, 그리고 청소년 시절의 촌스러운 엄마를 보면서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아빠와 결혼을 해서 누나와 나를 키우고 점점 늙어가는 엄마를 바라보는데 왠지 모를 먹먹한 감정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여리고 사랑스러운 엄마가 고난의 삶을 살았다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과 그런 엄마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느님께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쏟아지는 눈물이었다.

그때 나는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던 아들의 눈으로 엄마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약하고 부족해도 그 모습 그대로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눈으로 엄마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체험을 통해 나는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을 만들지 않고 하느님께서 만드신 엄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