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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이야기
지혜는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기에 …


글 장숙희 루시아 수녀 | 민족화해위원회,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대구대교구와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현,남북하나재단) 공동운영 북한이탈주민 주택미배정자시설인 ‘바오로쉼터’의 소임을 받았습니다. 당시 대구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 이기수 비오 신부)는 설립 초기였지만 위원장 신부님의 애정어린 관심과 도우심은 쉼터 가족들에게 큰 힘과 위로, 의지가 되었습니다. 위원장 신부님이 쉼터를 방문한 날은 가족들이 아주 좋아하였고 곧 잔칫날이 되었습니다. 천주교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신부님과 함께 식사하고 환담을 나누는 시간이 쉼터 가족들에게는 자랑스럽고 기뻤던 것입니다. 실무자인 저나 쉼터 가족이나 서로 모르는 게 많았던 어려운 시기에 위원장 신부님께서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초창기 바오로쉼터는 하나원 수료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주택 배정을 받지 못한 북한이탈주민 남성 쉼터로 시작하였습니다. 이후에는 그들의 가족들도 함께 입소하여 여성, 가족 쉼터를 겸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직원들은 이분들이 주택 배정을 받기까지 쉼터에 머무는 동안 남한 정착 과정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에 동행하였습니다. 민족화해위원회와 저희는 그들의 의식주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종교, 문화, 여가 활동 전반에 대해 가능한 모든 자원을 제공해 드리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입소자들의 바람과 희망, 꿈의 실현을 도와드리는 일이기에 상당한 시간을 들여 그분들을 이해하고자 상담하고 대화하는 일이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대화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우리와 한민족이지만 오랜 세월 다른 사상과 체제 속에서 살아왔기에 사용하는 언어의 다름과 대화방식의 차이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되었습니다. 단지 북에서 나고 자란 환경의 차이만이 아니라 개인적 성향차이도 천차만별이어서 대화의 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작은 쉼터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편히 쉬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분들의 주된 주장은 자신들을 책임진 제가 빠른 시기에 주택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곳이 북과 달리 같은 구역 내에 작은 임대아파트와 일반아파트가 공존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일반아파트를 구해달라고 청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겼던 것입니다. 아마도 북은 같은 구역 내에서는 비슷한 환경의 삶을 살았던 모양입니다. 몇 달이 지난 후 저는 가족들이 ‘소장님! 토론합시다!’라는 말만 해도 지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분들께 제가 청하기만 하면 무엇인가를 해 드릴 수 있는 책임자가 아니며 천주교 수도자, 즉 수녀인 점을 먼저 강조하고 대화에 임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 경험상 이분들은 자신들을 책임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나이와 관계없이 어린이가 부모에게나 청할 만한 것을 바라고 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3개월을 지냈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이 살던 곳과 자본주의 세상의 다른 점을 이해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 니다.

북한이탈주민은 1990년대 후반부터 다수 입국하기 시작 하여 2007년 북한이탈주민정착보호법이 제정된 후 이 법의 보호를 받는 국내 정착 북한이탈주민은 현재 3만여 명에 이르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들은 여전히 소수자이며, 많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입국 경위나 북에서 살 때의 경험 등으로 미루어 보아도 이분들이 결코 북한 주민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남과 북이 서로 오가지 못하므로 북에서 나고 자란 이분들을 통해서만 그쪽 사정을 알 수 있기에 북한이탈주민들과의 친교의 경험은 매우 소중한 자산입니다. 저 또한 쉼터에서의 만남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분들을 이해하는 데에 더욱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시는 하느님 안에서 우리 바오로 쉼터의 모든 가족들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를 어여삐 여기소서. 저희에게 복을 내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