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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청소년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김대건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글 박성은 요셉피나 | 만촌3동성당, 중1

 

중국 성지 순례 일정이 정해지고 해외에 나가는 것이 처음이었던 저는 설레었고 조금은 긴장도 되었습니다. 출발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한국에서는 연일 폭염 경보가 내리는데 중국도 무더울까 걱정되어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도록 부모님과 매일 기도드렸습니다. 출발하는 날 일기예보에는 상해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해서 부모님께 안전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상해에 도착하니 온도는 한국보다 낮았지만 습도가 엄청 높아 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마중 나오신 현지 가이드 선생님을 따라 대기해 있던 버스를 타고 김가항(金家巷) 성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가이드 선생님께서 중국 교회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중국의 교회는 송나라 때 처음 전파되어 명나라 때 자리를 잡게 되 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많은 어부들이 천주교를 믿었는데 그 어부들이 배를 타고 여러 지역으로 가 천주교를 알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최양업 신부님, 그리고 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중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걸어서 중국까지 유학을 오셨다고 합니다. 중국에 도착하신 후 신학 공부를 하며 사제 서품을 위한 준비를 하셨고, 1844년 부제품을 받고 1845년에 사제 서품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1년 남짓한 짧은 사제 생활 후 체포되셔서 25살의 젊은 나이에 순교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을 텐데 저와 비슷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소의 싹을 키워 내셨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됐습니다. 또한 젊은 나이에 하느님을 향한 큰 믿음으로 선교하고 순교하신 것이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 더욱 존경스러웠고 닮고 싶었습니다. 설명을 듣고 김대건 신부님께서 사제 서품을 받으셨던 김가항 성당에 도착해 김대건 안드레아 기념 경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기념 경당은 작고 아담했지만 거룩하고 아늑했습니다. 현재의 김가항 성당은 원래 위치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새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도시 계발로 철거된 원래 성당의 일부는 현재 수원교구의 은이공소로 옮겨져 축소 복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허물어졌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원되어 그 역사를 지켜 나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의 성당은 명나라 때인 1628~1643년에 중국 화동 최초로 건립된 성당으로 주변에 김(金)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김가항 성당이 되었다고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사제 서품을 받으실 때의 성당은 큰집을 구입해 성당으로 썼던 건물이라 내부는 단순한 구조였다고 합니다. 원래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었는데도 인테리어 하나하나에서 김대건 신부님의 발자취가 묻어났습니다. 천장과 바닥은 신부님께서 타셨던 라파엘호를 형상화했고, 제대 뒤에는 신부님의 석고상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면 벽 중앙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성해인 척추뼈 부분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로 한국 교회를 위해 노력하시고 하느님을 위해 순교하셨던 신부님의 삶을 조금이나마 보고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끈을 놓지 않으셨다는 점이 존경스러웠고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둠이 내려앉은 상해를 느끼기 위해 와이탄 거리로 야경을 보러 나갔습니다. 바로 앞의 큰 강과 그 뒤로 높이 솟아오른 빌딩들을 보며 중국 최대의 경제 도시인 상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에는 상해 에서 곤산으로 이동해 소횡당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대성당 옆의 소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를 참배했습니다. 소성당 옆 작은방에 신부님의 손가락뼈 일부분이 모셔져 있었는데 유해 앞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번창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심에 감사드리고, 저도 신부님을 따라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수녀님이 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유해 참배 후 대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대성당 제대 뒤쪽에 큰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인들의 모습, 그리고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예수님과 많은 성인들께서 늘 나를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당에서 나와 다시 항주로 이동해 서호 유람선을 타고 송성 가무쇼를 보았습니다. 유람선을 타고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호수를 둘러보니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고 ‘이게 중국이구나.’ 하고 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송성 가무쇼를 통해 천 년 전 중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선물 받은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마지막 날인 셋째 날에는 성당 두 곳을 다녀왔습니다. 먼저 서산 성모 대성당에 갔습니다. 상해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에 성당이 위치하고 있다기에 올라가는 길이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100m 정도 되는 높이로 십자가의 길을 따라 묵상하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올라갔습니다. 서산 성모 대성당은 1935년에 지어졌는데 성당과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서 해마다 5월 성모 성월이 되면 중국 각지에서 5~6만 명의 순례객이 방문하고 평소에도 관광객으로 붐비는 명소라고 합니다. 서산 성모 대성당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고풍스러움과 아기 예수님을 머리 위로 들고 계시는 성모상에서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곧바로 주교좌성당인 서가회(徐家匯)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이 성당은 1608년에 세워진, 상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우리나라의 두 번째 신부님이신 최양업 신부님이 사제 서품을 받으신 성당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성당 내부는 고딕 양식으로 제작되어 서양의 유명한 성당 느낌이 났지만 제대의 위치와 모습 등이 무척 특이했습니다. 미사 한 대당 지향을 한 개씩만 넣을 수 있었던 시절에 하루 동안 들어온 많은 미사 지향을 해결하기 위해 중앙의 가장 크고 중요한 제대를 중심으로 뒤쪽, 그리고 옆으로도 작은 제대가 많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미사를 드리며 기도를 했다는데 제대 위에 놓인 성인의 석고상은 이 제대가 어느 성인에게 바쳐진 제대인지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성전 밖에는 옛 건축물답게 악령을 내쫓는 여러 동물의 석상과 우리나라 스타일과 조금 다른 중국만의 느낌을 품고 있는 성가정상이 있었습니다. 주교좌 성당이라서 그런지 다른 성당보다 더 거룩하고 웅장했고, 중국 특유의 건축 양식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두 개의 성당 방문 후 원래 예정되어 있던 서산신학교와 김대건 신부님의 첫 미사 장소인 횡당 성당 방문 일정이 취소되어 아쉬웠습니다. 그곳에서 김대건 신부님의 첫 미사의 거룩함과 웅장함을 깊게 느끼고 대구대교구의 신학교와 비교해 보고 싶었는데….

그러나 우리 조상들께서 우리 땅을 우리 손으로 지켜내고자 흘리셨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견학할 수 있어 설레었습니다. 독립 열사들께서 치열한 삶을 통해 우리나라를 지켜내심으로 그 후손인 우리들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음을 깊이 감사드릴 수 있었습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아 중국에 오면 꼭 이곳을 방문하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방문하게 되어 영광이고 기뻤습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 동안 김대건 신부님께서 중국에서 보내신 모든 시간을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일부분이라도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이 참 좋았고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김대건 신부님의 열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 낯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느님께 의지하며 성소를 키워 좋은 열매를 맺으신 신부님의 강한 의지와 용기를 닮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같은 분이 한국천주교회에 계셨다는 것이 참 다행이고 감사했습니다. 저 또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나의 성소를 잘 키워서 한국천주교회를 위해 작은 밀알이 되어야겠다는 의지를 다짐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챙겨주시고 신경 써 주신 청소년국장 황성재(프란치스코) 신부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가이드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