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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의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이야기
또 다른 숙제


글 김동진 제멜로 신부 | 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 주임

 

5월 5일부로 드디어 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기간 : 10개월 (2018년 7월 16일 - 2019년 5월 5일)

장소 : 볼리비아 산타크루즈 주 뉴플로데 차베스 지방 로메리오 지역 11개 공동체

착공 시도 : 총 31개 지하수공

착공 길이 : 지하 2780미터 이상 대수원 발견 지하수공 수 : 17개

총 수량 : 1,360톤 이상

 

이것이 후원자분들과 저희 한국 신부들, 그리고 한국계 지하수 개발회사 오아시스가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일부 작은 공동체를 제외하고는 할 수 있는 곳은 모두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궁극적인 목적인 각 가정으로 물을 보내는 수도시스템 구축은 갈 길이 남았지만 적어도, 확실한 수자원 확보라는 큰 진보의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자평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가뭄 시기에 물로 인해 이웃 간에 다투고, 새벽부터 물을 차지하려 지표수를 모으는 수동 펌프 앞에 긴 줄을 서던 모습은 추억 속의 장면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지면을 빌려 모든 후원자분들과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한 분 한 분의 선한 마음과 실천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지 못했을 일입니다. 마음속 깊이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마음과 도움을 통해 당신 영광을 드러내신 주 하느님을 찬양할 뿐입니다.

 

이렇게 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요즈음 저희 신부들은 또 다른 생각에 잠겨있습니다.

작년에 이 연재를 시작할 때 드렸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이 꼭지의 제목은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그러하기도 합니다. 작년 첫 연재 때 비르히니아라는 새신부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죽음을 야기한 빈추가라는 흙집 벽에 사는 벌레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한 문장 더 추가하고 싶다고, 저의 염치없는 바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그리고 건강한 지붕과 벽…〉

 

며칠 전, 항상 그렇듯 저녁시간에 공동체 미사를 위해 밀림 속 공동체를 찾았습니다. 그날은 미사가 많은 날이라 다른 공동체 미사를 끝내고, 그 공동체 아이들을 본당 트럭에 태워 바람을 쐰다는 핑계로 또 다른 공동체 미사에 함께 참여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짐칸에 옹기종기 앉아 재잘대는 아이들로 인해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공동체에 도착해서 공소회장과 잠깐 이야기하고 미사를 차리고 있는데 한 여자 아이가 다가왔습니다. 제가 첫영성체를 준 아이였고, 요즘 본당이 있는 마을에 유학 와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한 채 제게 가정의 문제라며 면담을 청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 잘 아는 아이였고, 아이들에게 우리 신부들은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기에 시간을 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미사 때 그 아이를 기억하며, 부모님의 불화로 인한 문제겠거니 생각했지만 미사 후 면담을 통해 들은 이야기에 가슴이 아렸습니다. 열여섯 꽃다운 아이, 본당이 있는 중심 마을에서 유학을 하는 그 친구는 지난 1월 방학 때 더 밀림 안쪽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고, 수도시설과 화장실이 없는 집에서 나와 씻고, 어머니의 일을 돕고자 모든 빨래를 들고 근처 밀림 속 강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같은 동네 동년배 아이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4개월째 생리가 멈춘 상태라고 했습니다. “신부님, 이제 저 행복한 척 하고 있을 수가 없어요.”라며 말을 꺼내는 아이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반복하며, 어떻게든 도와주고 지지해주고 해결할 수 있게 해보마하며 다짐을 했습니다. 임신 테스트기를 비밀리에 구입해 검사를 하며 음성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임신 양성반응이 나왔습니다. 너무나 혼란하고 가슴이 아팠지만 아직 부모에게조차 알리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부모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를 달래서, 먼저 부모님께 알려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딸의 이야기를 들은 부모는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의연했고, 자녀의 아픔 앞에서 지지와 격려를 해주고 계속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가해자 처리와 태어날 아기의 문제 등 앞으로 풀어가야 할 일들이 산더미입니다.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함께 공감해주고 동반해주고 지지해주는 일이 전부입니다. 비극 앞에서는 그 개인이 스스로 이겨나가고 극복해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어린 아이들이 누구보다 먼저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신뢰받는 존재라는 무겁고도 두려운 책임감에 무엇인가 이들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이제 프로젝트 하나의 문을 닫으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고민하게 됩니다. 〈건강한 지붕과 벽 프로젝트〉는 질병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성이 지켜지고,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여 품위있는 삶을 영위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이제 모든 공동체가 마르지 않는 우물을 가졌으니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화장실을 가지는 것도 언젠가는 꿈꿔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흙으로 된 벽과 풀로 된 지붕으로 이루어진 한 칸의 방에 모여 사는 이들에게 개인 프라이버시는 없습니다. 당연히 성교육의 기본을 익히지 못했고 이로 인한 성윤리의 혼란을 가져와 남의 프라이버시와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혼란의 피해자는 늘 여성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실 아직 아무런 구체적 계획도 청사진도 없는 상황이지만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바닥부터 부딪치며 이뤄왔듯이 또 부딪쳐 볼 생각입니다. 결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먼저 작은 트럭을 어떻게든 하나 사서 밀림 속에서 구할 수 있는 목재, 석재, 모래 등 건축자재들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구상 중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지상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다시 한 번 저희들이 이 현실의 불의와 아픔에 싸워 나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김동진 신부 : 메일 padregemelokim@gmail.com

카톡 아이디 f-jemello@hanmail.net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그리고 건강한 지붕과 벽〉 프로젝트 후원

대구은행 505-10-160569-9 재)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조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