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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과 응답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글 정경아 마리아 막달레나 수녀 | 성바오로딸수도회 청년 사목 담당

 

매일 새벽 성당에 가기 위해 수녀원 쪽문을 열고 길을 나섭니 다. 새벽녘에도 동성로에는 수많은 젊은이가 카페, 노래방, 음식점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옵니다. 불타는 금요일과 즐거운 토요일을 보낸 주일 아침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젊은이를 거리에서 봅니다. 그 거리를 지나 성당으로 향하는 수녀들의 걸음에 절로 기도가 담기는 풍경입니다. 자연스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향한 기도와 염려가 일상의 시작이 됩니다. 또한 밤새 흘러나오는 유행가와 젊은이들이 유희를 즐기는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로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젊은이들을 향한 연민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기도를 드리며 잠자리에 듭니다.

“평화와 선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수도원의 신비로운 침묵 속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찾으며, 사람들에게 달려가는 하느님의 보행자들은 행복합니다.” (「바오로가족 기도서」 ‘성바오로딸들의 행복’ 중에서)

동성로 한복판에 ‘바오로딸’ 서원이 있습니다. 대구대교구 신자들이라면 서적, 성물, 음반 등을 사기 위해 혹은 자료를 구하거나 알아보기 위해 한 번쯤은 들리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수녀들이 기도하고 생활하는 수녀원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세상 한복판에서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수녀들의 일상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수단이 선용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보속의 정신으로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행가와 소음 가운데 수녀들의 기도 소리와 성가 소리가 창문을 넘어 공원 담장을 넘고 길거리로 울려 퍼질 때 세상과 사람들을 품고 기도하고 있음을 새삼스레 느끼곤 합니다.

성바오로딸수도회의 청년 사목은 젊은이들과 함께 걸으며 그들의 고민, 아픔, 희망을 나누며 전담자들이 지역으로 나누어 사도직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경기지역, 충청과 호남지역, 대구와 영남지역(제주 포함.) 에 전담자를 두어 젊은이들과 함께 수도회의 고유한 정신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그들이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데 조금 더 활기차고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을 고유하게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드릴 수 있도록 고민하고 식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시끄럽고 복잡하고 유행이 넘실거리는 동성로 한복판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2017년 12월부터 대구·영남 지역에서 청년 사목 전담자로 소임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청년 사목 소임을 받은 것도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물론 여러해 동안 ‘성소사목’을 하시는 수녀님들을 도운 경험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젊은이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아파하고 고민을 나누고 식별하는 역할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청년 사목’은 제게 새로운 도전이자,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를 요구합니다.

새 소임을 받고 대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청년국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감사 미사를 드리고 친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저는 여러 형태의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한국에서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녹록지 않기에 교회 내에서 활동하며 신앙의 성장을 위해 모이는 그들을 보고 많은 감명과 함께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청년들 가운데 남성이 많은 것을 보고 참으로 의아하면서도 놀라웠습니다. 내심 한국 교회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각자가 하느님께 받은 성소, 즉 ‘거룩한 부르심’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알아차리면서 충실히 살아가려고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성소는 세 가지 이유, 즉 하느님께 무한하고 영원한 영광을 드리는 것이고, 복된 선택을 통한 은총의 샘과 특별한 상급이며,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위대한 선물이라는 점에서 가장 소중한 보석이며, 마음 안에 숨겨진 보화입니다.”(바오로가족 창립자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젊은이들이 바오로딸 서원을 방문하면 수녀님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이야기를 건네고 도움을 주려고 다가갑니다. 그들에게 제가 진행하고 있는 성경 통독, 책 읽기, 사회 교리 등의 프로그램을 소개해 줍니다. 또 성소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제게 소개해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젊은이들을 만나다 보면 그들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보물을 모르고 있거나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움에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갇혀 하느님이 마음 안에 담아준 보화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간혹 그 보물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때 어린이처럼 기뻐하는 젊은이들을 만날 때는 저 역시 너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성소’를 잘 발견하고 살아가려고하는 모습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은 일이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성바오로딸수도회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 즉 매스 미디어를 통해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인 방법을 통해 기쁜 소식이 쉽게 전해지고 열매 맺기를 바라며 온 삶을 투신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도 “남들이 벽만 바라보고 있는 곳에서 길을 식별하고, 남들이 위험만을 보는 것에서 가능성을 알아보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시선입니다. 그분께서는 젊은이의 마음에 뿌려진 선의 씨앗을 소중히 여기고 길러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모든 젊은이의 마음은 거룩한 땅으로 여겨져야 합니다.”(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67항)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열매가 맺어지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없더라도 어디에선가 열매를 맺으리라 희망하며 씨앗을 뿌립니다. ‘성소’의 씨를 뿌리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만나는 젊은이들이 제 눈앞에서 수도 생활을 하겠다고 결정하지 않더라도 어디에선가 각자의 아름다운 성소의 열매를 맺을 것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발은 아름답습니다.

 

* 성바오로딸수도회 정 마리아 막달레나 수녀님은 2008년 종신서원을 하고, 대구, 영남, 제주지역 청년 사목 전담자로 젊은이들과 다양한 형태로 함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