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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글 류주화 시몬 신부 | 성요한 복지재단 상임이사, 일심재활원장, 2대리구청 사회복지담당

 

저는 성요한복지재단에서 발달장애(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1. 건배 제의

우리 선생님들과 술자리를 하면서 종종 건배 제의를 청하거나 스스로 하기도 합니다. 건배 제의를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기대에 찬 눈으로 잔을 들고 있기에 쑥스럽고 부담이 되지요.

- 건배 제의의 원칙 : 길어서는 안 된다. 재미가 없어서도 안 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식상한 이야기는 더더욱 안 된다. 그리고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언젠가부터 저의 건배 제의는 재단이사장이신 정성해(베드로) 신부님의 소중한 가르침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작게·낮게·함께’. 제가 “작게”, “낮게” 하면 모두들 “함께” 하고 응답해줍니다.

크고 높으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그리고 많은 사랑과 인정을 홀로 받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그런데 그렇게 살려고 하니 긴장되고 실망하게 되고 상처를 주고받게 되네요. 작아져야 많은 것에 관심을 갖게 되지요. 낮아져야 가슴 뜨겁게 살아가지요. 함께해야 사랑을 나누지요. ‘작게·낮게·함께’는 저의 건배 제의이자 가톨릭사회복지의 뜨거운 사랑이야기입니다.

 

 

2. 특이사항 없음

생활일지는 생활동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하루하루 기록해 둔 서류입니다. 생활일지를 보면 자주 눈에 띄는 말이 있지요. 바로 ‘특이사항 없음’.

‘특이사항 없음’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특별한 일이나 사고가 없음에 대한 이야기이니까요. 하지만 문득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파하고 힘들어하지만 다 표현하지 못해 끝내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매순간이 감격이며 기적일 텐데 미처 우리가 다 발견하지 못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저를 답답하게 합니다.

 

 

3. 마트 털기

드디어 대문을 열었습니다. 정말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지요.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형제자매들이 원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큰 어려움이 따릅니다. 실제로 자신 스스로도 위험하지만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겪어야할 고초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인 것을요. 죄를 지어서 여기에 갇힌 것이 아닌 것을요. 그래서 큰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연 첫날부터 많은 곳에서 원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길가는 행인들로부터, 빵집에서, 편의점에서, 슈퍼마켓에서… 그 중 제일 큰 어려움은 마트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신나고 급한 마음에 마트에 들어가서는 눈에 보이는 과자와 음료수를 닥치는대로 뜯고 장난질을 합니다. 웃지 못 할 상황 속에서 선생님들이 묵묵히 지역주민들을 설득했지요.

2년이 채 안 된 지금, 우리 형제자매들은 가게에 들어가서 자신이 원하는 과자와 음료수를 선택하고 자리에 앉으면 가게에서 저희들에게 여유롭게 연락해옵니다. 많은 지역주민들이 우리들을 이해해주시고 함께 살자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참 눈물겨운 마트 털기입니다.

 

 

4. 보편지향기도

미사에 큰 방해를 주지 않는 형제자매들은 인근에 있는 성당(반야월성당, 신서성당, 각산성당)으로 미사를 봉헌하러 갑니다. 그 외 미사에 큰 방해가 될 수 있는 형제자매들만 저랑 재활원에서 미사를 봉헌하지요.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상상이 가십니까? 난리도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때로는 고민과 갈등이 되기도 합니다. ‘이 형제자매들에게 이런 미사가 필요할까?’ 저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모습과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미사 중에 많은 부분인 전례봉사를 형제자매들에게 맡겨 두었습니다. 주례신부에게 조금 방해가 되지만 복사도 있고, 부족한 표현으로 “어버버, 아멘.” 혹은 침묵으로 보편지향기도를 바치고 있고, 봉헌바구니도 들고 있고, 제대의 초도 끕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어느 순간부터 미사를 봉헌하면서 눈물이 날만큼 감동이 밀려옵니다. 화려하지도, 멋지지도,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지도 않은 미사인데… 어디서 온 감동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