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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사이비(2)”


글 김윤식 안토니오 신부 | 하양성당 보좌

 

지난 호에서 저는 ‘사이비’라는 단어에서 출발하여 그 단어의 의미와 함께 생각해볼만한 몇 편의 영화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번 호를 통해서는 현재 우리 교회가 직면한 이단들의 도전에 대한 저의 소견을 개인적인 체험과 함께 나누어드리고자 합니다.

신학생 시절의 저는 이단으로 구분되는 우리나라 신흥종교들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이단들이 이토록 무섭게 성장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가진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특별히 수많은 청년들이 밤낮으로 거리로 나서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투신하도록 만든 그 뜨거운 열정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해답 안에 우리 교회가 고민해 온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의 문제’에 대한 실마리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몸소 부딪혀보았습니다. 때때로 거리를 지나치며 만나는 그들을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오랜 대화를 나누어보기도 하고, 일부러 먼저 다가가 연락처를 넘겨주고 한동안 만남을 지속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화가 깊어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제가 가톨릭 신학생이라는 것을 밝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는 말이 더 잘 통하겠다며 반색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결국은 모두 먼저 연락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그들의 열정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이미 어떤 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박해를 겪는 순교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까지 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만났던 그들은 진리를 향한 굳건한 신념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한 선의를 지니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모습 앞에서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도 안타깝고, 아까웠습니다. 이렇게 착하고 순수한 청년들이 좀 더 일찍 제대로 된 진리를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교회는 이들의 뜨거운 열정을 먼저 알아봐주지 못했을까. 자책감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이내 분노로 바뀌어갔습니다. 이런 청년들의 순수한 열정을 이용해 자신의 창고에 재물을 쌓고, 득세하려는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먼저 그 배경은 사회와 교회의 공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더 극한 상황으로 내몰려가는 이 사회의 청년들.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경쟁구도 안에서 상처받고 지쳐가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은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리에서 말 한마디 건네주는 그들이 참으로 반갑고 고마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구세주로 나타난 것은 우리 교회가 아닌 이단이었습니다. 밤낮으로 그들의 관심과 필요를 연구하고, 새롭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접근하며, 그들 마음의 작은 불씨에 바람을 일으켜준 것이 우리 교회가 아닌 이단이었습니다. 어쩌면 수많은 청년들을 이단으로 이끈 것은 그 어설픈 종교적 진리보다도 나를 존중해주고 가치있게 만드는 또 다른 청년들의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니었을까요. 그들이 그토록 고생해가며 전파하고자 하는 ‘구원’ 역시 그들이 각자의 삶에서 직접 체험했던 구체적인 만남과 새로운 관계들 안에서 맛보았던 크고 작은 행복이 아니었을까요.

 

이단은 청년들을 사로잡은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 어떻게 하면 대 사회적으로 , 종교적으로 그들의 입지를 다질 것인가, 동시에 그들의 마음에 피어오른 불을 꺼뜨리지 않고 유지하게 할 것인가, 교육, 문화행사, 봉사활동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 안에서 청년들은 점차 의심의 여지를 잃어갑니다. 나는 분명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무엇이 더 필요한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그들의 사회문화적 공헌들은 한편으로 기성교회가 과연 이 사회 안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도록 했습니다. 나아가 그러한 기세를 몰아 더욱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우리에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 도전들은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문제는 각 이단들의 수뇌부, 진짜 ‘사기’를 치고 있는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 외에는 모두 언젠가 진실을 마주하고 큰 상실감에 빠지게 될 잠재적 피해자들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 밖의 양들입니다. 그에 대한 관심과 대책도 늦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 교회 안까지 들어선 의심의 굴레입니다. 특별히 청년 사목 현장에서 이단 피해 사례가 증가하면서, 오랜만에 교회로 돌아오거나, 모든 일에 열정적이거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언행을 보인다면 어쩔 수 없이 먼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전폭적인 지지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말입니다. 서로 의심하고 갈라서게 하는 것, 이단이 바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제대로 알고 경계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배울 점이 있다면 과감히 배워야겠습니다. 너무도 안타깝지만 그동안 우리가 그들보다 먼저 움직이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이단에 미혹된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함께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