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나의 수도원 순례기 ②
은총의 빛 가운데 머물다


글 김윤자 안젤라 | 선산성당

 

 이번에 처음으로 가는 곳은 경남 창녕군에 위치한 나자렛 예수 수녀회(본원)로, 1991년 수녀원 설립 당시부터 계셨던 홍 데레사 수녀님께서 폐교된 초등학교를 수녀원으로 창설하신다고 아주 고생하신 곳이라서 진작 가고 싶었지만 이제야 방문하게 됐다. 긴 세월 동안 수녀원은 그토록 허름하던 폐교에서 아주 멋지게 바뀌어 요양원과 다른 복지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어 놓으셨을까 감탄을 하며 수녀원 입구에 들어서니 수녀님 한 분이 나오시더니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셨다. 혹시나 해서 홍 데레사 수녀님이 아직도 계시냐고 여쭈었더니 요사이는 김해에 계신다고 하셔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원래 성직자, 수도자들은 언제든 떠나라면 떠나야 될 운명의 분들이니 그러셨구나 하고는 수녀원 안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우리를 안내한 수녀님께서는 원장 수녀님이 강의 중이신데 나오시면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가라며 맛있는 홍차를 내어주셔서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원장 수녀님께서 오셨다.

원장 수녀님과의 만남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인사를 나누고 나오는데 원장 수녀님은 우리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셨다. 다음 순례 장소까지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어서 나자렛 예수회 수녀회를 위해서 묵주기도를 바쳐드렸다.

 

나자렛 예수 수녀회를 나와서 경남 함안군에 자리한 가르멜 모후 수도회향했다. 나자렛 예수 수녀회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서 찾아가기도 편했고 또 길가에 수도원 문패가 붙어 있어서 너무 좋았다. 수도원에 들어서니 너무나 조용하고 적막하기까지 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수도원의 건물이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큰 건물이 먼저 눈에 띄어서 거기로 들어서려는데 예수 성심상 바로 뒤편 언덕이 노란 꽃으로 뒤덮여 있어서 모두 감탄을 하며 가까이 가 보았더니, 개나리꽃은 아닌데 참으로 특이하면서도 소박하고 예쁜 노란색 꽃들이 온 언덕을 휘감으며 피어 있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에, 눈에 담고 대성당 입구에 서서 문을 열려고 하니 굳게 닫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아래로 내려가서 용기있게 벨을 눌렀더니 다시 대성당 입구로 오라고 해서 올라가니 수녀님 한 분이 나오셨다. 수녀님께서는 오늘따라 날씨가 조금 흐리고 쌀쌀하니 응접실에 들어와서 차도 마시고 둘러 볼 수 있는 곳은 둘러보라고 하셨다. 어느새 시간이 정오가 넘었는지라 수녀님께서 우리들의 점심을 걱정하시기에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왔기 때문에 밖에 놓인 돌 식탁 같은 곳에서 먹겠다고 말씀드렸다. 수녀님께서는 그러지 말고 응접실에서 편하게 드시고 가면 당신이 나와서 문을 잠그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미리 연락을 하고 오면 다른 것은 못해 주어도 된장국을 끓여서 점심은 대접 할 테니 꼭 연락을 하고 오라고 하셨다. 얼마나 행복하고 반가운 말씀인지! 당신들은 소박하지만 농사도 짓고 지낸다며 수녀원 생활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수녀님과 헤어져 우리들은 밖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수녀님께서 주신 커피도 한 사발(?)이나 받아서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어서 우리가 가지고 간 큰 컵에 옮겨 담아왔다.

 

가르멜 모후 수도회를 나와서 이번에는 같은 함안군에 있는 섭리의 딸 수녀회(본원)로 발길을 옮겼다. 가는 길이 꼬불꼬불해서 헷갈렸지만 그래도 수녀원 입구에서 동네 분을 만나서 수녀원을 쉽게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수녀원은 마치 어느 대감집을 들어가는 그런 느낌으로 소슬 대문을 열고 “이리오너라.” 하고 속으로 외치고 들어갔는데, 들어간 우리들보다 나오시는 수녀님이 더 놀라서 허겁지겁하시는 바람에 멋모르고 들어간 우리들도 함께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녀님의 친절한 응대에 조금 전의 그 당황했던 양쪽의 모습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수녀원 경당으로 들어가서 하느님께 먼저 고하고 내려오니 수녀님께서 따뜻한 생강차를 태워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조금 전 당신이 왜 놀랐는가 하면, 일하는 복장으로 일하다가 느닷없이 우리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너무 놀랐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수녀님은 가톨릭신문에 소개된 인터뷰에서 우리 일행을 본 적이 있다면서 언젠가는 수도원 순례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반갑다고 하셨다. 사실 우리들의 순례기는 〈빛〉잡지에 연재되어서 더 잘 알려졌는데….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고 우리들은 순례가 아니고 그냥 어느 시골집에 편안히 놀러 온 기분이었다. 수녀님과의 즐거웠던 만남을 뒤로 하고 나오는데 수녀님께서 따라 나오시면서 다음 행선지인 진동 가르멜 수도원에 대해 알려주시기까지 했다.

 

우리는 다른 순례지로 발길을 돌리려다가 그렇게 열심히 소개해 주신 수녀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위치한 진동 가르멜 수도원으로 순례의 길을 변경하여 출발했다. 흐리던 날씨는 바람에 날리듯이 비가 흩뿌렸고 길을 따라 수도원에 들어서니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차들이 즐비하게 많았다. 아마도 오늘이 가르멜 재속회원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도원 곳곳에 재속회 회원들이 분주히 다니고 있어서 우리는 대성당에서 기도만 드리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더 머물면 재속회 회원들의 모임을 방해하는 일밖에는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재속회 회원들의 복장도 너무 좋았고, 재속회 회원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우리는 또 한 번 놀랐다.

 

진동 가르멜 수도원을 나와서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위치한 엄률 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여자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아무 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는 이 수녀원은 나의 언니와 같이 이 길을 많이도 지나쳐 갔고 지인들도 트라피스트 수녀원에만 다녀오시면 잼을 종류별로 가지고 오셔서 주셨기 때문에 잼만 생각나던 그런 곳이었는데 이번에는 순례의 길로 정하고 들어갔다. 흩뿌리던 비가 조금씩 더 내리는 중에 우리는 수녀원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 성물방 비슷한 전시실이 있어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는 중에 헬레나 형님은 아이들한테 하나씩 가져다준다며 잼을 몇 개씩이나 사셨다. 나에게도 한 개 사 주신 헬레나 형님의 아이들 사랑은 대단하다. 이곳 수녀원에서는 이콘, 묵주, 카드 등을 제작하여 판매하고 유기농 수제잼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으며 피정의 집도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 일행은 완전히 잼을 사는 곳처럼 순례를 하고 돌아서 나왔다.

 

다음으로 간 곳은 오늘 여정의 마지막 순례지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위치한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한국지부)였다. 아득히 먼 40년도 더 전의 옛 추억이 담긴 곳으로 발길을 돌리자 가슴은 마구 설레면서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그 옛날의 수녀님들이 한 분이라도 계실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함께 지냈던, 지금도 늘 함께 지내고 있는 세실리아와 함께 왔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에 가슴은 더 설레었다. 그때 수녀원 기숙사에 함께 살았던 금희와 명희 씨, 루갈다, 수산나도 생각나서 가슴은 더 설레었다. 비는 조금씩 더 내리기 시작했지만 수녀원에 들어서니 마침 출타하려는 수녀님이 계셔서 순례를 왔노라고 하니 들어가라고 하셔서 수녀원에 들어서니 예전의 그 수녀원이 아니었다. 그때는 마산 창포동에 있었는데 지금은 이곳 산밑으로 옮겨와 터전을 잡았다. 이곳 수녀님들도 우리들처럼 사복차림이었는데 헬레나 형님은 그런 사복차림의 수녀님은 처음 뵙는다고 했다.

 

들어가서 내가 아는 버니 수녀님, 메리 수녀님, 안나 수녀님, 글라라 수녀님을 찾으니 버니 수녀님과 메리 수녀님은 미국이 본국이라서 본국으로 들어가셨고, 안나 수녀님은 경기도에 계시고 글라라 수녀님은 오늘따라 출타 중이신데 수요일에나 오신다고 했다. 그래도 안내해 주시는 수녀님을 따라서 수녀원 곳곳을 다 둘러 볼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수녀원에 계신 수녀님들은 네 분이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마산 자유수출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서 일을 하셨다면 지금은 다문화 쉼터와 다른 노동 여성들의 상담과 그런 일들을 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 옛날 내가 알던 창포동 그 수녀원은 여성 노동자들의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다고 들려주신 수녀님께서는 “어쩌면 나보다 안젤라 자매님이 우리 수녀원의 역사를 더 잘 알고 계시네요.”라며 너무나 편안하게 대해 주셨다. 그러면서 요즈음 한국천주교교회 성지순례 덕분에 신자들이 가끔씩 순례를 오는데, 어떤 팀들은 와서 피정도 하고 간다는 말씀도 하시면서 피정할 수 있는 방과 다른 것도 말씀해 주셨다. 참으로 신나는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우리들이 가겠다고 일어서자 수녀님께서는 다음에 또 오라며 배웅해 주셨다. 순례를 마친 우리들은 안나 언니 집에서 아주 편안하게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