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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용서와 화해의 해’ 선교신앙수기 공모 특별상
동아줄


글 문주원 세라피나 | 성동성당

 

이혼 후 쏟아질 시선과 편견보다 이대로 있다가 맞닥뜨리게 될 가족의 참혹한 미래가 더 무서웠던 나는 한밤 중에 빈손으로 두 아이만 데리고 집을 뛰쳐나왔다. 무작정 도시를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얼마나 달렸을까… 한적한 곳에 경차를 세운 후 뒷좌석에 몸을 구긴 채 잠이 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북받치는 설움을 참으려고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남편이 들이대던 칼날의 서늘함이 아직 목에 생생했다. 한 손으로 목을 감싸며 잠을 청했다. 날이 차차 밝아왔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여성긴급전화에 도움을 요청했다. 근거지와는 떨어진 대도시의 모자보호시설을 소개받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근처에서 둘째 시누이와 우연히 맞닥뜨렸다. 누군가 내 운명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분명했다.

 

울분을 억누르며 서둘러 옮긴 곳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보호시설이었다. 생활과 자립교육을 위해 최적화된 구조의 신축 건물이었다. 아이들은 멋진 집에 살게 되었다고 좋아하며 내 눈치를 봤다. 보호받을 수 있고 의식주가 해결되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린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며 ‘나’라는 사람을 돌아보았다. 태어나면서부터 평탄치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좋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번에는 진짜 적막강산이다. 혼자 이겨내는 것과 어린 자식들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은 너무 크게 달랐다. 아무리 굳은 각오를 다져보아도 두렵고 암울한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러다 점점 마음이 벼랑 끝에 서버렸다.

아직 익숙지 않은 잠자리 때문에 잠을 설치다가 창가로 여명이 비치자 바로 일어나 앉았다. 일어난 김에 일출이나 볼까 싶어 옥상에 올라갔다. 오랜만에 보는 하늘이 반가웠다. 바다에서, 산에서, 들에서 뜨는 해는 보았지만 성(?)에서 뜨는 해는 처음이었다. 자세히 보니 십자가가 지붕 꼭대기에서 빛을 모으는 듯 보였다. 무슨 교회 건물이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성처럼 이국적이고 거대하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아름답다.”는 말을 나지막이 내뱉었다. 온 세상이 나 하나 적으로 돌린 듯 외로운 처지에 주변의 정취와는 별개로 홀로 고고한 것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아이들을 잠시 맡기고 산책하러 나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웅성웅성하며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이르렀다. 주위를 살펴보니 옥상에서 보았던 그 십자가 성이었다. 멀뚱멀뚱 서 있다가 돌아서서 가려는데 중년의 수녀님이 나를 붙잡았다. 그제야 이 성의 정체가 성당임을 알았다. 수녀님은 “예비신자세요? 이리로 오세요.”라며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내 왼쪽 가슴에 꽃을 달아주며 손을 낚아채더니 성당 안으로 끌었다. 따뜻한 손의 느낌이 좋아서 아니라는 말도 못하고 수녀님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성당 안까지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천정이 돔으로 되어 있고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빛이 투과하는 천정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열두 제자와 한복을 입은 수많은 사람의 모습으로 가득 차 눈부셨다. 정면에는 무대만큼이나 큰 단상이 경건하게 보였다. 그 주위를 에워싼 타원의 벽면에는 열두 제자의 전신을 묘사한 형상들이 열을 지어 있었고 정면으로 예수님을 못 박은 십자가가 있었다. 쭈뼛쭈뼛 서 있는 나를 수녀님은 중간쯤 좌석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거기에는 나처럼 가슴에 꽃을 단 이들이 말끔하게 차려입고 열을 지어 앉아 있었다. 그제야 아차 싶은 마음에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질질 끌며 나온 슬리퍼에 검정 운동복 바지, 외투라고는 달랑 하나 뿐인 회색 재킷, 부스스하게 대충 묶은 머리, 기억을 더듬어보니 세수도 하지 않고 나왔다. 나는 얼굴이 화르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수녀님은 앉아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자리가 바뀌었다며 제단 바로 앞으로 가자고 했다. 제일 끝에 앉아 있던 내가 선두로 나아갔다. 혹여 맨발을 들킬까봐 온 신경이 발에 모여들었다. 겨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등에 땀이 흘렀다. 앉자마자 뒤에 있던 수녀님이 일어서라고 살짝 알려주었다. 우리는 쭈뼛쭈뼛 일어났다.

어디선가 이 세상 목소리가 아닌 듯한 노랫소리가 들려오더니 웅장한 합창이 온 성당 안을 휘감았다. 곧이어 황금빛이 감도는 의복을 입은 신부님과 그보다는 단순하고 하얀 옷을 입은 두 남자가 따라 나왔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너무나 아름답고 경건한 장면들이 음악과 어우러져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온몸에 열이 올랐다. 감동한 것인지 서러움에 북받친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만 나오면 좋았으련만 손수건도 없는데 콧물마저 줄줄 흘러 볼썽사나워졌다. 초라한 행색으로 앉아 있는 것도 모자라 훌쩍훌쩍 소리까지 내며 울고 있으니 신부님도 자꾸만 쳐다보았다. 선서를 한 후 제단 앞으로 나섰다. 신부님이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줄 때는 마치 영혼에 새겨진 것 같고 나를 송두리째 내어놓은 기분마저 들었다. 박수를 받고 노래가 울려 퍼지자 신부님이 퇴장했다.

이윽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시는 분이 앞으로 나오더니 자신이 앞으로 담당 교리교사라고 소개했다. 교리 시간은 언제이며 준비물은 성물방에서 사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어떤 기도를 함께하고 마쳤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오만 원이 있었다. 준비물에 성경이 있었던 것 같아 하나 사서 나왔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몽롱했다.

방에다 조그만 상을 펴 성경을 올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종교 서적은 처음이라 제대로 이해가 될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이 또한 책이니 읽다 보면 조금씩 이해가 되겠지 싶었다. 일단 아침에 하지 못한 세수부터 하고 왔다. 그런데 방문을 여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성경 중간 즈음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겉표지가 가죽인 데다 묵직해서 일부러 펼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올려놓기만 했는데… 내가 펼친 적도 없고 창문이나 방문이 닫혀 있었으니 바람이 분 것도 아니고 혹시 누가 왔었나 싶어서 현관문을 열고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 어찌 되었건 간에 첫 장부터 차례대로 읽으려고 덮으려는 찰나에 어떠한 부분이 눈에 훅 들어왔다. “여인아, 용기를 내어라. 마음속으로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온 세상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님을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은 아무도 해친 적이 없다… 그러면 네가 이제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서 도망쳐 나와 우리에게 왔는지 말해 보아라. 아무튼 너는 안전한 곳을 찾아 이리 온 것이다. 용기를 내어라. 오늘 밤은 물론 앞으로도 너는 안전하다. 너에게 해를 끼칠 자 하나도 없다.”(유딧 11,1-4) 눈물이 주르르 쏟아졌다. 나의 고단함을 아는 이어야만 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위로였다. 오랫동안 시커멓게 뭉크러져 있던 것들을 뱉어내듯이 한참을 울었다. 얼마동안 그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울고 나니 몸도 마음도 후련하고 가벼워졌다.

그날 이후 성경을 계속 읽어나갔다. 네부카드네자르가 하느님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 이름을 하느님이라 생각하고 읽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에는 그 외에도 훌륭한 말씀이 많았지만 절박한 나에게 그 구절만큼 와 닿는 것은 없었다.

 

어느 날 저녁기도 후 아이들에게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읽어주었다. 책을 다 읽은 후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 오누이를 구했듯이 우리에게도 하느님이 동아줄을 내려주셨다고, 그 동아줄을 꼭 잡고 있으면 자꾸 좋아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엄마, 행복해?”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를 이렇게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하느님이 곁에 계시니 정말 행복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곧 잠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이 깰까봐 까치발로 조용히 옥상에 올라가 달빛이 내려앉은 십자가를 향해 기도했다.

‘주님, 제게는 주님이 너무도 간절히 필요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내려주신 이 동아줄을 절대 놓지 않을 것이니 주님도 제 동아줄을 꼭 붙들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