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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저 산 너머”를 보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


글 이영구 실베스텔 | 교구 평신도위원회 사무국장 겸 기획위원장

 

영화 “저 산 너머”를 감상한 것은 5월 4일(월) 오후 CGV아카데미였다. 개인적으로는 거의 1년여 만에 보는 영화였는데 공교롭게도 코로나19로 더욱 발을 끊게 된 후 극장에 가는 것이라 긴장되기까지 했다. 영화는 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을 다룬 영화로, 시사회라는 동기부여가 없었다면 조금 망설여질 만큼 영화관에서는 발열검사를 비롯하여 손 소독, 명부 작성 등의 과정을 거쳐 입장해야 했고 한 줄씩 비운 지정석에 앉아야 했다. ‘내 평생 마스크를 쓰고 영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는 생각을 하는 중에 영화 “저 산 너머”의 첫 화면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1993년 정채봉 작가가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대화로 엮어낸 “저 산 너머”는 소년한국일보에 3개월간 연재되었고 추기경님의 뜻에 따라 선종 이후 2009년 2월 『바보 별님』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2019년 선종 10주기를 맞아 『저 산 너머』로 개정판이 출간되면서 영화로까지 제작된 것이다. 비록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로만 한정된 이야기였지만, 그 순수하고 담백한 줄거리와 배우들의 연기에 젖어 관람하다보니 시종일관 눈물이 쏟아졌다. 어쩌면 우리의 어린 시절과 그렇게도 흡사했던지,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어머니’의 향기와 추억으로 더욱 마음을 울렸다고나 할까.

 

추기경님의 아버지(김영석 요셉)가 옹기장수 행렬을 따라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부터 병석에 누워 힘든 시기를 보내는 모습, 남편 임종 후 어머니(서중하 마르티나)와 더불어 어린 형제가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 그 안에서 주님께 의탁하며 자식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고자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내내 우리 가정의 역사가 함께 떠올라 더욱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대구대교구 제3차 꾸르실리스타였던 나의 아버지가 옥외 행사 중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2남 2녀를 키우며 살아가신 나의 어머니. 어린 내가 생각해도 어머니는 정말 강철 같은 신앙과 의지로 사셨다. 어머니의 깊은 신심을 이어받으며 성장한 우리 4남매 중 누나와 나는 혼인을 통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남동생은 사제성소를 받아 교구의 사제가 되었고 여동생 마리아 수산나는 가르멜의 수녀로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머니께서 평생 처음 참석한 사제서품식을 통해 받은 감동과 하느님으로부터의 어떤 소명을 느끼시고는 아들 동한과 수환에게 ‘신부님이 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형인 동한은 어머니의 뜻을 순순히 따랐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와 가족을 위해 신부보다 인삼 장수가 되고 싶었던 소년 수환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번민하는 모습에 나의 회상 또한 이어졌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본당에서 어린이 복사단장을 하면서 매일 새벽미사에 참례하여 차분히 독서하는 모습을 본 주위 분들이 “영구는 꼭 신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하시자 평소 아들 하나는 주님께 봉헌하겠다고 결심하셨던 어머니는 나에게 소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게 하셨지만, 정작 신부가 되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나로서는 당연히 입학이 좌절되어 어머니를 실망시켜드리고 말았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미사에만 가면 눈물이 나곤 했다던 동생은 서울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에 진학하였고 어머니의 바람대로 사제가 되었다.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때면 어머니는 큰 목소리로 질책하시기보다 십자가 고상 앞에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도록 하곤 하셨는데, 추기경님의 어머니 또한 그러셨으니 그 시대 어머니들의 신심이란 얼마나 놀라운가. 자녀에게 물려줄 가장 소중한 유산이란 경제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 아닌 삶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평생을 지켜갈 신앙의 유산임을 확신하고 계셨고 실천을 하셨으니 말이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 사제가 되고 주교님에 이어 추기경으로서 한국 민주화 운동에서의 큰 발자취와 선종하시기까지, 그분 삶의 전체를 담은 다큐멘터리라고 기대하고 오신 분들도 더러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코로나19로 심신이 지치고 마음이 한없이 무디어진 우리에게 어머니의 큰 희생과 기도, 가족의 사랑 속에서 마음 밭에 특별한 씨앗을 심어나간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 모습을 한편의 아름다운 수필처럼, 수채화처럼 담백하게 풀어냈다. 또한 그 아름다운 한편의 영상을 위한 최종태 감독과 배우들의 열연에 우리 각자 잃어버렸던 마음의 본향을 떠올리게 했고 글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큰 기쁨을 안겨 주었으니 진심으로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