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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사목과 후원회 이야기
당연한 것이 되는 순간 감사함은 사라지고…


글 권호섭 스테파노 신부 | 군종교구 동해해군성당 군종실 대위

 

군종신부인 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군종병입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할 뿐만 아니라 군종신부로서 해야 하는 모든 일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군종병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군종병이 성당에서 숙식할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군종병은 군종신부에게 큰 영향을 주는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군종신부들끼리 모이면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가 군종병이기도 합니다.

 

“너희 군종병은 잘 하냐?”

“아! 우리 군종병 최고지! 성실하고, 똑똑하고, 빠릿빠릿하고!”

“너희 군종병은 어때?”

“뭐, 없는 것보다는 낫지!”

“너희 군종병은?”

“우리 군종병? 아….”

 

2016년 군종신부로 임관해서 지금까지 여덟 명의 군종병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중에는 전역하는 것이 아쉬울 만큼 잘한 군종병이 있었는가 하면, 중간에 교체하고 싶은 군종병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군종병이 전역을 하고 새로 군종병을 뽑아야 할 때가 되면 지나간 군종병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리게 되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군종신부로 임관을 하며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만나게 될 모든 장병들은 하느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막상 그 “모든 장병”에 군종병을 포함시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얘는 왜 이렇게 느리지?’, ‘얘는 내가 하는 말을 듣기는 할까?’, ‘얘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네.’ 그렇게 이런저런 불만이 생겨나면서 군종병은 제 일기장의 단골 손님으로 자리잡았습니 다.

 

“처음에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다. 내가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함께하는 사람. 그런데 같이 지내다 보니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참고 참다가 조심스럽게 불만을 말했다. 부디 조금이라도 바뀌기를.”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화를 냈다.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탁을 했다. 소용 없었다. 하루 종일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신경전도 벌였다. 나만 답답했다.”

 

“그렇다. 얘는 내 일을 도와주는 군종병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이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고유한 존재이니 결코 내 마음에 들 수는 없다. 결국 남은 방법은 둘 중에 하나다. 군종병을 인정하고 내가 군종병에게 맞추거나 아니면 군종병을 바꾸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맞다. 내가 군종병에게 맞춰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군종병은 내 생각을 따를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군종병을 바꿔야만 하는 것일까? 겨우 1년만 참으면 안 볼 수 있는 사람과 지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 부부 사이였다면 어땠을까? 많은 부부들이 이러면서 이혼을 하게 되는 것인가?”

 

“내가 지금의 군종병을 보낸다면 일종의 이혼일 수도 있겠다. 이혼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내가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니 해야 할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계속 기분이 좋지 않고 짜증만 난다. 처음 만 나는 병들에게는 그렇게 친절하면서 함께 지내는 군종병에게는 너무나 차갑게 대한다. 군종병은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미사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 군종병과 단 둘이서 미사를 봉헌했다. 준비한 강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다 아는 군종병에게 강론을 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군종병을 빨리 보내야겠다.”

 

“군종병을 보내기 위해 인사과에 문의했다. 생각보다 복잡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게 정말 맞는 일일까?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하느님을 찾으면 결과는 뻔하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쪽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하신다. 하느님께서는 결국 ‘감사’라는 두 글자를 생각하게 하셨다. 누군가에게 감사하지 못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끝날 수밖에 없다. 항상 함께 있는 사람이어서 그 소중함을 잊어버렸고, 군종병이 하는 모든 일들은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당연한 것이 되는 순간 감사함은 사라진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군종병에게 감사할 것이 정말 하나도 없는가? 물론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군종병이 있었기에 더 잘 할 수 있었고,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병사들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길도 알려주었다. 나 혼자서 해도 잘 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군종병이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고맙게도 우리 군종병이 참 많은 일을 도와주고 있었구나. 그래, 너 전역할 때까지 같이 있자.”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사함보다는 당연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가 그렇고, 남편과 아내 사이가 그렇겠지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 순간 감사함은 사라집니다. 감사함이 사라지면 상대방과의 관계 또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많이 감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군종신부인 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군종병입니다. 앞으로 몇 명의 군종병을 더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군종병에게 늘 감사하고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군종신부로 만나야 할 장병들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