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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독서일기
잠수복을 입은 나비가, 왼쪽 눈꺼풀로 쓴 일기를 읽을 때


글 전형천 미카엘신부 | 국내연학

 

여러모로 여의치가 않아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책을 한 권 샀습니다. 그 얇고 가벼운 책을 자주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묵은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언어의 의미는 맥락이 만들어낸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같은 표현이라도 말하는 사람이 달라진다면 듣는 사람은 다르게 듣습니다. 한 사람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말하는 상황이 다르다면 의미는 미묘하게 달라지기도 하지요. 같은 표현도 마주한 사람마다 다르게 읽어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언어의 의미는 표현에 고정된 것이 아니고, 표현이 자리한 구체적인 맥락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어떤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표현이 아니라 저자나 읽는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는 프랑스 잡지 『엘르(ELLE)』의 편집장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오후가 덮치듯 찾아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바쁘고 정신없지만 자신을 즐겁게 하는 계획이 있던 그날, 운전사까지 딸린 멋진 리무진을 처음으로 타 본 날, 비틀즈의 “내 삶 속의 어느 하루(A day in the life)”라는 노래가 흘러나을 때 그는 의식을 잃습니다. 3주 만에 의식을 찾았을 때, 몸은 깨지 않았습니다.

 

“죽지는 않지만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비된 상태에서 의식은 정상적으로 유지됨으로서 마치 환자가 내부로부터 감금당한 상태, 즉 영미 계통의 의사들이 ‘로크드 인 신드롬(locked-in-syndrome)’이라고 표현한 상태가 지속된다. 왼쪽 눈꺼풀을 깜박이는 것만이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일 뿐이다.” - 12쪽

 

뇌출혈로 인한 감금 증후군이었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쪽 눈꺼풀뿐이었습니다. 그는 왼쪽 눈꺼풀을 깜박거리며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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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빈도에 따라 철자들을 배열한 다음, 편집자가 알파벳을 천천히 읊조리면 보비는 해당 철자에서 눈꺼풀을 깜박입니다. 그렇게 하루에 반쪽 분량씩, 15개월 동안 20만 번 눈꺼풀을 깜 박이며 28편의 에세이를 써나갑니다. 편집자 클로드 망디빌은 보비의 손이 되어 주었습니다. 도미니크는 클로드의 도움을 받아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는 때때로 일방통행식 대화로 만족해야 하는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할지 무척 궁금하다. 나 자신은 번번이 마음을 요동할 정도로 감정을 제어하기 힘들다. 다정한 친지들의 전화에 침묵이 아닌 아무 말이라도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 58쪽

 

“내 아들은 바로 앞에 앉아 있는데, 나는 그 아이의 아빠이면서도 손으로 녀석의 숱 많은 머리털 한번 쓸어 줄 수도, 고운 솜털로 뒤덮인 아이의 목덜미를 만져 볼 수도, 또 부드럽고 따뜻한 아이의 작은 몸을 으스러지도록 안아줄 수도 없다.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린다.” - 98쪽

 

“나는 창가에 쌓인 책들을 바라본다. 오늘은 나에게 책을 읽어줄 사람이 없으니, 그저 쓸모없는 도서관처럼 생각된다. 세네카, 졸라, 샤토브리앙, 발레리 라브로가 겨우 1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지만 가혹하게도 나는 가까이 갈 수가 없다.” - 139쪽

 

도미니크는 자신의 상태를 ‘잠수복’ 속에 갇힌 것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그의 글 속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오도 가도 못하던 이들에게 삶은 죽음보다 외롭고 힘겨운 것이었겠지요. 그가 알파벳 소통법을 통해 가장 먼저 한 말도 사실은 ‘죽고 싶다’였다고 하지요. 그러나 그에게는 왼쪽 눈꺼풀 말고도 마비되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상상력과 기억이었지요. 그는 ‘나비’가 되는 상상을 통해 병원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눈에 담았던 시간과 장면 중 가장 행복했던 것들을 떠올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었습니다. 그렇게 이 책은 『잠수복과 나비』가 되었습니다.

 

“이 낯익은 풍경을 대하며, 나는 막막한 심정이 되어 생각에 잠긴다.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복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없을까? 나의 자유를 되찾아 줄 만큼 막강한 화폐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 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 174쪽

 

 

잠수복을 입은 나비는 어떤 사명감으로 왼쪽 눈을 깜빡였을까요. 그러나 그렇게라도 눈을 깜박이다보면,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부아가 좀 가라앉았을까요. 그러다보면, 자꾸만 옅어지려 는 삶에 대한 의지가 잠잠히 차올랐을까요. 몸을 죄어오는 잠수복을 열어 줄 열쇠가 지구에는 없었고, 나비는 그것을 찾아 떠나기로 합니다. 책이 발간되고 이틀이 지난 뒤 도미니크는 왼쪽 눈꺼풀마저 감고 삶을 옥죄어오던 잠수복을 벗어 던지고 나비가 되어 날아갔습니다.

 

휴학원서를 내던 날, 늘 그랬듯이 선생님과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흘러갔는지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만, 선생님과 헤어지기 전 장례미사의 강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더랬습니다. 동료가 죽었을 때 강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큰 부담이 되겠다는 것, 그리고 망자의 삶에 대해서는 망자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장례미사의 강론은 살아 있을 적에 미리 준비해두는 것은 어떨지 서로 물었습니다. 결국은 목소리를 빌려줄 누군가를 미리 찾아두는 것도 필요하겠다고 농담을 건넸었지요.

그날 집으로 돌아와 마주한 노을빛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세 번 배신하던 밤에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신 포도주 빛깔을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유를 여전히 알 지 못합니다. 그렇게 앞산이든 병원이든 어디에서건 유리창 너머로 노을이 지면, 그 책은 어김없이 제 손에 들려있었고, 그래서인지 하늘빛은 언제나 닮아있어 보였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 하는 오늘도 창 너머의 하늘은 그날과 닮아있습니다. 제게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은 그날의 대화와 하늘빛과 함께 기억되려나 봅니다. 우리가 남길 말들은 도미니크의 책을 닮을 수 있을까요.

 

장 도미니크 보비, 『잠수복과 나비』, 양영란 옮김, 동문선, 1997.

 

 

* ‘읽기와 쓰기’ 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를 바랐습니다만, ‘독서일기’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장정일 작가의 독서일기에 대한 오마주의 마음을 담았음을 밝혀둡니다.

한번 써보고 싶은 것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만 이렇게 제 이 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제 글은 어두워서 《빛》잡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두움을 감당해주셔서 언제나 고마웠습니다. 누군가 읽을 글을 때에 맞추어 준비한다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순수한 독자로 돌아 갈 수 있어 무척이나 다행스럽습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을 그때에도, 저는 앞산 창가 책상에 앉아 읽고 쓰고 있을 겁니다. 다시 만나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 이번 호로 신부님의 독서일기는 끝맺습니다. 그동안 연재해주신 전형천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