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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
쪼매만 더…


글 이수환 바오로 미끼 신부|카자흐스탄 알마티교구 선교사목

 

+ 찬미예수님!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이수환 바오로미끼 신부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 ‘찬미 예수님’은 낯설지 않은 인사말이죠? 이곳에도 같은 표현이 있답니다. ‘Слава Иисусу Христу’라 쓰고 ‘슬라바 이수수 흐 리스투’ 라고 읽습니다. ‘예수님께 영광을’이라는 뜻이지요. ‘찬미예수님’이라고 한 분이 이야기하면 다른 분도 똑같이 ‘찬미예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분이 ‘Слава Иисусу Христу’라고 하면 다른 분은 ‘Во Веки Веков’(바 베키 베코브) 라고 합니다. ‘세세에 영원히’라는 뜻입니다. 인사말을 종합하면 ‘세세 영원히 예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라고 되겠지요?

지난번 편지에 카자흐스탄의 지리적 환경을 이야기했네요. 이곳 환경에 대해 쪼매만 더 이야기할게요. 지금은 2월! 아직 겨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카자흐스탄의 겨울에 대해 꼭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특히 ‘눈’(snow) 왜냐면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들이 겨울에 펼쳐지거든요. 여기는 한국보다 눈이 엄청 많이 오는 곳입니다.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보통 한 뼘 정도 쌓이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것도 몇 시간 만에 말이죠.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눈’의 성격이 한국과 좀 달라요. 건조한 눈이 펑! 펑! 내려서 사뿐사뿐 쌓인답니다. 펑! 펑! 내리지 않고 퐁! 퐁! 내려도 마찬가지예요. 눈이 엄청 많이 쌓인답니다. (혹시 ‘펑! 펑! 은 뭐고, 또 퐁! 퐁! 은 뭐지?’라고 하고 계신가요? 하하하)

눈이 많이 내려서 쌓인다고 하니까 엄청 춥다고 생각하시겠지요? 물론 겨울이니까 춥긴 하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덜 춥습니다. 날씨와 관련되는 에피소드가 문득 떠오르네요. 제가 한국에서 소임을 마치고 카자흐스탄으로 간다고 하니까 신자 분들이 내복을 선물로 많이 주셨습니다. 한 5~6벌 정도요? 엄청 추운 곳으로 간다고 따뜻한 마음으로 챙겨주셨는데, 여기 와서 보니 내복 입을 일이 잘 없습니다. 왜냐면 일단 내복을 입을 정도의 날씨가 아니에요. 추울 때는 영하 15도 정도까지 되긴 합니다만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니 차가운 바람이 몸에 부딪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칼바람’이 여긴 없습니다. 그렇다고 봄, 가을 같은 날씨는 아닙니다. 겨울 내내 온도가 영하임은 분명합니다. 감을 잡기 어려우시죠. 좀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제가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뜨거운 사우나 말고 차가운 온도의 사우나에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차가운 공기가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경우였지요. 체감 온도는 그리 춥지 않지만 온도계 상으로는 영하였습니다. 이곳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겨울이 딱 그렇습니다. 그래도 감을 잡기 어려우시죠? 이곳을 느껴보기 위해 오시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감을 잡을 수 없지만 느껴보기 위해 몸을 던지는 거…(이 타이밍에서 멋지게 한 말씀 드리자면) 이것이 ‘선교’입니다. 이곳 사람들이 겨울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겨울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잘 관찰하여 배우고 함께 극복하는 것이 선교가 아닐까요? 한국의 추위만을 생각해서 한국에서 겨울을 이겨내는 방법만을 이곳 사람들에게 전해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뭔가 맞지 않지요? 겨울을 보내는 방법을 저마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좀더 이해하고 느껴보기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이지요.

겨울을 보내는 방법이 다름을 이야기 하다 보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자꾸만 주절주절 하게 되네요.(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건, 이건 보고서가 아니라 편지라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음을 담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겨울에 이곳에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바람은 불지 않는다고 하지만 기온은 영하거든요. ‘뭐~ 춥지 않네. 춥지 않아.’라고 하면서 거리에 오래 서 있으면 쿵!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속부터 꽁꽁 언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그래서 비록 추위는 느껴지지 않더라도 차가운 공기는 막아야 하니까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에 모자를 쓰면 머리가 눌린다는 이유로 잘 쓰지 않지요? 이곳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가서 놀라는 이유가 그런 겁니다. 이렇게 추운데 모자를 쓰지 않는다고….

이왕 겨울이야기, 눈 이야기를 했으니 쪼매만 더 할게요. 혹시 영웅적인 선교이야기를 기대하셨던 분들에게는 너무나도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영웅이 아니라서요. 제가 한 달에 한번 카자흐스탄 북쪽 도시 누루술탄에 갈 일이 있습니다.(일에 대해선 다음 호에 자세히 말씀 드릴게요.) 그곳은 알마티와 다르게도 겨울에 몹시 춥습니다. 바람도 붑니다. 진짜 추울 때는 영하 40도 정도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갔던 날 중에서 가장 추웠을 때는 영하 28도 정도였습니다. 코로 숨을 들이마실 때 콧속의 털이 순간 얼어버립니다. 그리고 내쉴 때 다시 녹습니다. 숨 쉴 때마다 얼었다 녹았다 합니다. 며칠 머물면서 기온이 영하 28도에서 영하 23도가 된 날이 있었습니다. 놀라운 게 뭐냐면 영하 28도에서 영하 23도가 되는데 따뜻함을 느끼는 겁니다. 말도 안 되게 춥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추운데도 따뜻함이 있는 거예요. 너무나도 신기해서 계속 생각을 좀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하구요.(오! 이제 뭔가 깨달음이 나올 차례인가요?) 우리 삶이 고통과 어려움뿐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건 본인만 알겠지요. 그리고 하느님하고요. 왜냐면 영하 28도와 영하 23도라고 하면 춥다고만 생각하지 따뜻함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건 느껴본 본인만 알죠. 그렇죠? 그렇다면 고통 중에서의 행복도 하느님과 우리 자신만이 알지 않을까요?

슬슬 편지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눈 이야기’ 쪼매 더 있어요.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거 보니 제가 여러분을 참 많이도 사랑하는가 봅니다. 진짜 마지막으로 쪼매만 더 할게요. 북쪽도시 누루술탄은 겨울 내내 엄청 추워요. 그래서 겨울이 시작되어 눈이 오면 겨울 내내 녹지 않고 계속 쌓이게 됩니다. 그래서 눈을 덤프트럭에 실어 도시에서 많이 벗어난 곳에 버립니다. 그렇게라도 치우지 않으면 도시가 마비되거든요. 눈을 계속 실어 나르는 거죠. 참 신기하죠? 그런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도시에서 덤프트럭 한두 대만 실어 나르는 게 아니잖아요? 엄청난 양의 눈을 실어 나르게 됩니다. 그 많은 눈이 겨울 내내 쌓여 있다가 봄이 되면 녹기 시작하는데 홍수가 발생할 정도입니다. 눈이 녹아서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물이 넘친다는 거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곳이 카자흐스탄입니다. 그곳에 바오로미끼가 살고 있고요. 그래서 늘 새롭습니다. 선교라고 어려움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새로움이 항상 넘치는 삶! 그 삶이 바로 선교입니다! 그래도 마무리는 멋지게 해야죠? 그죠? 건강 잘 챙기며 지내셔요. 또 뵙겠습니다. Увидимся! (우비딤샤 :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