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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생태 영성 살이
“거룩한 존재가 거룩한 존재들을 만나는 기쁨”


글 황종열 레오|평신도 생태영성학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찬미받으소서』 2장에서 창조 만물은 “모든 것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손을 내미시어 주시는 선물”(76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이 세상 만물의 아버지는 “하느님”이시라고 하면서 만물들 하나하나에 하느님의 신비가 담겨 있다고 진술하십니다. “나뭇잎, 길, 이슬, 가난한 이들의 얼굴에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233항) “세상은 모든 것을 채워 주신 하느님 안에서 펼쳐”지고 있고(233항), 그러므로 “작렬하는 태양과 드리워진 어둠 안에서”까지도 “하느님께서 계시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선언하십니다. “가장 뛰어난 장관에서부터 가장 작은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경탄과 경외의 끊임없는 원천”으로서 “하느님의 끊임없는 계시”라고요.(85항)

 

교황님의 저 말씀들은 우리는 “모든 사물 안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 안에서, 특히 어렵고 힘든 모든 사람들과 존재 자체로 돌봄과 사랑이 필요한 모든 어린이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과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과 하느님의 모습을 담고 있는 모든 사람을 이렇게 하나로 이어 놓으신(89항 참조) 교황님은 13세기에 사셨던 보나벤투라 성인을 인용해서 말씀하십니다. “피조물들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법을 더 잘 이해하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contemplation)이 더 완전해집니다.”(233항; 85항도 참조)

보나벤투라 성인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런 통찰은 우리가 드리는 미사와 영성체에 사람과 공동체와 자연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데 도움이 되어 줍니다. 예를 들자면 말씀의 전례를 마치고 봉헌 예물을 준비 할 때 사제는 먼저 빵을 들고 기도합니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이어서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고 기도합니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

신자들은 사제의 기도가 끝날 때마다 응답합니다. “하느님, 길이 찬미 받으소서.”

 

신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미사는 이 빵과 포도주를 하느님께 바쳐 드리면서 함께 나누는 식사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사제가 없으면 미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제가 있더라도 미사를 드릴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빵과 포도주가 없을 때입니다. 자연을 통해서 하느님에게서 온 농부들의 노고가 알알이 배인 이 “거룩한” 빵과 포도주가 없이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축성하여 함께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빵과 포도주는 자연 생태에서 자라서, 밀과 포도를 생산한 모든 농부를 포함해서, 농부들 가운데는 신자 아닌 이들도 많은데요, 사람들이 문화를 이루며 살아온 사회 생태를 통해 준비됩니다. 위의 기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 신앙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성찬에는 주님과 사람들과 자연, 땅과 밀과 포도, 그리고 이것들이 결실을 이루기까지 하늘과 땅과 물과 바람과 온갖 존재들이 함께 작용해 온 과정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성찬이 단순히 사제와 신앙인들이 드리는 감사와 찬양인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가 사제와 함께 드리는 미사는 한편으로는 놀랍게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연하게도 온 우주 만물과 함께 모든 사람들과 같이 거행하는 것임을 드러내 줍니다. 우리 교회는 사람과 자연이 하느님의 살림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을 성찬 전례에서 명시적으로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집을 지으시고 그 집을 내주시며 살게 하신 물고기와 새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들짐승과 집짐승 모두에게 양식을 주셨습니다. 먹고 살면서 번성하도록 이렇게 하셨습니다. 사람에게도 땅에서 나는 것들을 먹거리로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음식을 먹는 것이 식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나눈 만찬을 통해서 우리의 식사가 하느님의 살림 안에서 갖는 의미를 새롭게 계시하십니다. 그리하여 먹는 것이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도구인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원래 바라신 대로 그 분의 생명에 참여하는 충만을 선물받고 그 선물을 함께 나누는 영원의 잔치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으로 대변되는 자연 만물을 통해 하느님이 주시는, 그래서 벌써 “거룩한” 양식을 당신의 몸과 피로 삼아서 거룩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게서 창조되고 양육되어 거룩한 것을 이렇게 축성하심으로써 우리의 양식을 그리스도화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자연을 통해서 주신 밥-식사를 형제들과 함께 따뜻하고 기쁘게 나누는 가운데 하느님과 이웃과 자연과 더욱 더 깊은 친교를 이루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숨을 쉬는 우리가 함께 모여서 예수님의 거룩한 몸으로 축성된 하느님의 거룩한 음식을 받아 모셔서 서로 하느님의 거룩한 살림에 동참하는 축복을 공유하게 해 주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찬미받으소서』에서 성찬례를 통합 생태적으로 해석하셔서 우리에게 이렇게 제시해 주십니다. “성찬례 안에 현존하시는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드님과 하나 되어 온 우주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성찬례는 그 자체로 우주적 사랑의 행위입니다. … 성찬례는 하늘과 땅을 이어 줍니다. 성찬례는 모든 피조물을 품고 그 안에 스며듭니다. 하느님의 손에서 나온 세상이 복되고 온전한 경신례로 하느님께 되돌아갑니다. 성찬의 빵 안에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성화를 향하여, 거룩한 혼인 잔치를 향하여, 바로 창조주와 이루는 일치를 향하여 나아갑니다.”(236항)

원래 거룩한 것을 거룩한 것으로 보고 맞이하며 동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태도는 하느님의 살림 안에서 그분의 온 창조물을 복음적으로 식별하고 살아가는데 요청되는 기초가 됩니다. 이런 태도는 자연과 사람 모두를 살리는 방식으로 하느님의 “우주적 가족”(宇宙與我家族之神) “우주적 형제애”(宇宙萬物兄弟之我) “우주적 친교”(宇宙共鳴)를 보다 더 충실하게 지켜 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것을 먹고 모시면서 삽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창조되어 이미 거룩한 것으로 만들어진 빵과 포도주를 사제가 다시 예수님의 몸과 피로 축성한 것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받아모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과 주님과 교회의 일치 안에서 거룩하고 또 거룩합니다.

 

지난 호에 말씀드린 것처럼 뇌의 작용들과 관련된 성찰을 이어갈 텐데요, 이번에는 먼저 우리의 머리뼈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태어난 아기의 머리뼈는 모두 붙어 있지 않고 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료 출처: https://slideplayer.com/slide/3468215/

 

아기의 뇌머리뼈는 앞머리뼈 두 조각, 두정골로 표현된 머리 윗 부분에 있는 마루뼈 양쪽, 옆머리뼈 두 조각, 뒷머리뼈 한 조각, 모두 7개의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앞숨구멍과 뒤숨구멍, 그리고 옆머리에 앞숨구멍 2개와 뒤숨구멍 2개, 모두 6개의 숨구멍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머리뼈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숨구멍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으면서 유연하기 때문에 아기가 태어나면서 충격을 덜 받고 살아서 태어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숨구멍들이 여러 곳에 열려 있어서 산소를 충분히 공급받아서 그렇게 빨리 자랄 수 있게 됩니다. 성장하면서 먼저 2~3개월 지나면서 뒤숨구멍부터 닫히고 옆머리 앞숨구멍들이 닫히고 옆머리 뒤숨구멍이 닫혀 가면서 앞숨구멍이 닫히게 됩니다. 그러면서 뼈들이 봉합되어서 아래와 같은 봉합선들이 뇌머리뼈에 생기게 됩니다.

우리의 뇌는 이런 뇌머리뼈들 안에서 보호받으면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뇌를 앞에서 뒤에서 위에서 옆에서 보호하는 이런 뼈들과 함께 눈과 코와 연결된 형태로 뇌의 바닥이 되어주는 뼈가 나비처럼 생겼다고해서 이름이 붙여진 나비뼈입니다. 이 뼈는 다음(67쪽 이미지 참조)과 같은 구조로 존재하면서 한편으로는 뇌를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머리의 거의 모든 뼈들과 이어져서 얼굴의 기본틀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나비뼈는 이마뼈와 뒤통수뼈, 그리고 뇌 윗부분을 감싸고 있는 마루뼈 2개와 뇌 옆 부분을 싸고 있는 2개의 관자뼈, 그리고 나비뼈 앞 부분에 형성되어 있는 벌집뼈와 코뼈, 얼굴뼈 가운데 2개의 광대뼈와 2개의 입천장뼈와 닿아 있습니다. 나비뼈는 거의 모든 머리뼈들과 이어져 있으면서 우리 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나비뼈에 구멍들이 여러 개 나 있는데요, 이것들은 신경들이 뇌와 몸 각 부분과 연결하도록 자리를 비워준 자기 희생의 증거들입니다. 아래 가운데 뒤쪽으로는 우묵하게 파인 모양을 하고 있는데요, 이 밑으로 뇌하수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rlfhrdlskasmsek&logNo=221262331830

 

우리의 머리뼈를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우리는 이렇게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요. 그가 누구이든, 남자든 여자든, 피부색이 어떻든,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든 관계없이 모두가 하느님의 하나의 시간 흐름 속에서, 그리고 자연이라는 하나의 공간 속에서, 그분의 살림 안에서 이렇게 오묘하고 아름답게 꼴지어져서 태어나 살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거룩하고 숭고한 일인지요!

기도 중에 거룩하신 우리 『빛』잡지 독자 여러분을 기쁘게 만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