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동(動)하다
무릎을 만지며


글 김관호 리카르도 신부 | 수성성당 보좌

어쩌다 선배 신부님들이 내 차에 타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차는 정말 지저분했다. 동기 신부 정도는 되어야 선뜻 문을 열어줄 수 있을 정도로 지저분한 내 차를 선배 신부님들은 흥미로워했다. 뒤죽박죽 섞여 있는 짐을 일일이 구경하면서 ‘이것은 무엇이냐?’, ‘이건 누가 준거냐?’와 같은 질문을 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내 차에 쌓여 있는 짐들의 의미와 역사를 소개했다. 내 차가 박물관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다 한 신부님이 책을 하나 집어 들면서 “요즘 많이 힘들구나, 책 제목부터가 남다르네. 제목이『상처로 숨쉬는 법』이다. 책에 밑줄 그어놓은 부분도 그렇고, 많이 힘드냐?” 라며 농담을 하셨고, 졸지에 나는 상처로 숨을 쉴 수밖에 없는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집으로 돌아왔다. 선배 신부님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사연 없는 삶은 없다. 삶의 결이 제각각 박혀있는 사연의 경중을 쉽게 따질 수 없다.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아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연을 지닌, 보통의 사람이기에 ‘아프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큰 상처는 없다. 받았던 상처만큼이나 이 상처를 치유받게, 그리고 위로해 줬던 수많은 시간과 사람들이 있었기에 아주 가벼운 상처가 잘 아물어서 나만이 알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흉터만 있을 뿐이다.

 

어릴 적 나는 지금처럼 겁이 많았다. 인대가 늘어나 반깁스를 한 것이 고등학생 때가 처음이었을 만큼 겁도 많았고,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순간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라면 할 수 있었던 옆돌기나 담장 넘기 같은 것은 시도도 하지 않았고, 남자아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했을 깁스의 경험은 아직까지 없다. 그래서 깁스를 하고 온 아이들이 부러웠다. 친구들이 깁스에 ‘빨리 나아라.’고 적어주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철없는 생각으로 뼈가 부러져 깁스를 해 보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내 뼈는 너무 튼튼했다.

 

선천적으로 약한 특정 부분을 제외하고는 나 자신을 튼튼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몇 해 전 주일학교 아이들과 좋은 기회를 통해 안나푸르나 등반을 다녀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말 아픈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무릎이 종종 시큰거리곤 한다.

 

아이들을 인솔하여 산에 올라갈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산에서 내려올 때 벌어졌다. 아이들을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돌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내려가는 아이들을 따라가는 것이 참 버거웠다. 올라갈 때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에 배신감을 느낄 만큼 아이들은 잘 내려갔다.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무리를 했고 내 왼쪽 무릎에 생채기가 생겼다.

시큰거리는 무릎의 통증이 남아 있고 등반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허무함과 절망감, 그리고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날 함께 등반했던 아이들이 성당에 모여들었다. 무릎의 통증은 아이들과 함께했던 그날의 시간과 새 신부라 미숙했던 그렇고 그런 무용담이 되어 아름다운 기억이 서린 추억이 되었다.

 

요즘도 종종 무릎이 시큰거린다. 무릎을 쓰다듬으며 안나 푸르나에서의 시간을, 그리고 그 이후에 함께 만들어 갔던 시간을 떠올린다. 이 회상에 잠기면서 나는 나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에서 잠시 빠져나와 숨을 쉬곤 한다. 힘들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 힘듦을 버티어 낼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상처들이 있기에 나는 지금도 숨을 쉬며 살아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식의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상처는 분명 아픈 것이다. 그렇기에 이 상처를 위로해 주고 치유해 주며 우리 각자가 결코 원치 않았지만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처에서 의미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아니면 정말 굳게 마음을 먹고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이 상처가 숨이 멎을 정도로 아프게 남아 있지 않길, 서로를 통해 숨을 쉴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