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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칼럼
오페라 길 위의 천국


글 여명진 크리스티나|음악칼럼니스트, 독일 거주

9월 순교자 성월입니다. 세상에 그 무엇도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참으로 많은 사람이 귀한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지난해 한국 교회는 한국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 탄생 200주년을 지냈습니다. 같은 해에 태어나 차례로 사제품을 받았지만 애석하게도 김대건 신부님은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순교합니다. 그 뒤를 이어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평생 선교와 사목에 전념했습니다.

신학생 시절을 마카오에서 보낸 최양업 신부님은 성가를 배우며 서양음악을 접했고, 조선으로 귀국해 교리와 신앙을 알리는데 있어 음악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유행하던 대중문학 양식을 빌어 시가 형식의 ‘천주가사’를 저술했고 박해 속에서도 신앙이 널리 뿌리내리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과로와 병으로 길 위에서 쓰러져 간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삶과 영성은 200년 후 오늘을 사는 재독 작곡가 박영희 소피아에게도 깊은 감명을 남기게 됩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 사목 활동을 하며 남긴 편지를 우연히 접한 박영희 작곡가는 서한집 속에 나오는 라틴어 가사로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작품이 완성되어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인 2021년 11월에 세계 초연되었습니다. 작품 구상에만 10년이 걸렸고 공연 준비에 약 5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온갖 고난에도 아무런 탓을 하지 않은 최양업 신부님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고 여든을 눈앞에 둔 박영희 작곡가는 전합니다.

오페라가 완성되기 전인 2007년?2009년, 최양업 신부님을 기리며 신부님이 외국 선교사들에게 라틴어로 보낸 편지의 일부를 가사로 테너 솔로와 관현악을 위한 〈빛 속에서 살아가면(In luce ambulemus)〉, 무반주 합창곡 〈주여, 보소서. 우리의 비탄을 보소서.(Vide Domine, vide afflictionem nostram.)〉와 〈주님,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소서.(Attende, Domine, mi-sericordiam tuam.)〉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오페라는 2부로 구성되어 있고,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하던 시대에 최양업 신부님의 일대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린 최양업과 아버지 최경환 성인과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의 등장을 시작으로 인생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지내는 ‘순례길 인생’을 살아간 최양업 신부의 험난한 여정을 오페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길 위의 천국’이라는 제목을 곱씹으며 구약의 모세가 떠올랐습니다. 이집트 탈출 후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가나안땅을 목전에 두고도 척박한 광야를 떠돌아야 했던 모세, 갖은 고생을 했지만 결국 모세는 가나안땅을 눈앞에 두고 죽습니다. 한때는 그 운명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에게는 광야에서의 매 순간 모든 걸음이 하느님과 함께한 천국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순교의 길을 따르겠다고 감히 다짐하기는 어렵지만, 그 피와 땀의 열매가 지금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신앙을 다시금 굳건히 하는 거름이 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조선에 신부를 양성하고, 선교하기 위해 죽어갔던 많은 서양 선교사들. 그 선교사들의 땅에서 지금은 많은 한국 신부님들이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서양음악을 처음 접하고 ‘천주가사’를 지어 천주교 신앙이 뿌리내리도록 한 최양업 신부님, 그리고 그 신부님이 남긴 글에 감명을 받아 최양업 신부님을 기리는 오페라를 작곡한 어느 작곡가의 이야기만 보아도 결코 그 험난한 걸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합니다.

9월 순교자 성월에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함께 내딛는 이 걸음이 또 다른 열매를 맺고 다시 거름이 되어 하느님 나라에 이르는 힘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마침내 언젠가는 천국에서 만나 뵙게 될 하느님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도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열 번째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