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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動)하다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


글 김관호 리카르도 신부|수성성당보좌

나의 부족한 글이 담겨 있는 내 꼭지에 앞서 생태 영성 살이에 대한 좋은 글을 써 주시는 황종렬 박사님의 교육신학 수업 시간에 메모했던 글을 곱씹곤 한다.

 

‘서로에게 배우지 못하는 교육 공동체는 아픈 공동체다.’

 

수많은 공동체를 마주한다. 내가 잠시 스쳐 가는 공동체부터 나의 결정이 중요한 공동체까지 많은 공동체를 만난다.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가려고도 하지만 철저하게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공동체의 모습을 판단한다. 숫자로는 탄탄한 공동체가 있는 반면 숫자는 부족하지만 내실이 있는 그런 공동체까지 수많은 면모를 바라본다.

 

바라보면 내심 기분이 좋아지고 괜히 마음이 더 가는 사람이 있다. 우리 청년들이 그렇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신부라고 해서 극진한 대접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다. 또 ‘청년회 회원이 많아서 사목을 잘하고 있다.’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도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참 좋다.

 

우리 청년들은 배워가는 중이다. 삼십 대와 이십 대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간다. 한때는 교리교사와 주일학교 학생으로 함께 시간을 보냈거나 오랜 시간 같은 본당 안에서 함께 자라온 이들이 다름을 알아가고, 배려를 살아가는 모습을 매주 바라본다. 물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당장 다음주에 다가올 문제와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문제가 느껴지곤 한다. 이 문제들은 서로에게 생채기를 주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배움을 주기도 한다.

 

우리 청년들을 처음 만났을 땐 ‘과연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보좌 신부를 기다린 만큼 분명 무엇인가를 원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외적인 형태로는 작은 공동체이고 어련히 때가 되면 해야 하는 의무처럼 우리 교회 안에 있는 행사를 하기에도 벅차 너무 성급하게 판단해 버렸다. 그래서 내가 당장 무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낙담과는 달리 매주마다 함께 모여 조그만 힘을 모아가는 그들을 눈과 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청년들은 절대로 아프지 않았다. 한때 많은 청년들로 붐볐던 그 자리는 이제 교회를 위한 책임감으로 채워 나가고 있다. 젊은이로 가득 찼던 교회의 지난 시간에 비해 많이 부족하고 패기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청년들은 묵묵히 자신들이 살아갈 다음 세대의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바라보면 모든 것이 문제일 것이다. 하기 싫다고, 할 수 없다고 일찌감치 저버린다면 어떠한 것도 배울 수 없고 문제로 가득 찬 아픈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다.

 

내 자리를 생각한다. 공동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인지, 공동체를 끌고 가는 사람인지 ….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오히려 아프고 약하고 작은 사람이었다. 건강한 공동체를 통해 나는 닫힌 마음과 눈, 그리고 귀가 열리게 되었다. 우리 청년들을 돌보러 내가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돌보기 위해 우리 청년들이 다가온 것이었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겠지만, 그리고 난 또 ‘고생하셨습니다.’ 하고 얼른 자리를 떠나겠지만 이들을 만날 주일을 기다린다.

 

청년들을 ‘젊은이’라는 프레임 속에 가둬 함부로 단정짓길 바라지 않는다. 젊은이는 무조건 밝고 활기차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 교회 안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가며 배워 나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로 청년들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겪게 될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우리 교회 역시 배워 나갈 수 있길 바란다.

 

세상 속에서 새로운 발걸음을 준비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만들어 내는 이들에게 교회가 무엇을 해야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그저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