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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의 신비를 살아가는 사람들 - 대구가르멜수녀원
평화를 빕니다


글 대구가르멜수녀원 공동체

 

“우리는 온 세상을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에 초대하고 싶다.” - 1959년 9월 30일 대구가르멜 창립 일기 중에서

 

이 일기에는 1956년 설립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어려운 여건 속에 대구대교구로 진출을 결심하게 된 오스트리아 마리아젤 가르멜 수녀님들의 깊은 마음의 울림이 담겨 있습니다. 저희는 모원 수녀님들의 기도의 열매이자 또 하나의 씨앗으로서 모든 이가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에 함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이 글을 시작해 봅니다.

저희는 ‘친교’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그리스도와의 우정 어린 친교의 역동성을 누구보다 강렬하게 증언한 ‘테레사 맨발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자이신 예수의 대 테레사 성녀를 떠올리게 됩니다. 성녀께서는 사람이 되어오신 그리스도, 성체 안에서의 일치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러한 성녀의 체험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12명의 사도단이라는 새로운 복음적 공동체를 결성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작은 공동체는 ‘예수님의 때로 회귀하는 것’. 공동체 구성의 중요한 두 가지 본질적 요소는 성체와 시간경입니다. 예수님을 보다 가까이서 따르는 삶이자 예수님의 삶(마음과 생각, 감정)을 다시 사는 것으로 성녀의 새로운 공동체의 진정한 면모는 예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 성녀 테레사의 『그리스도 체험』

 

성녀는 딸들의 온 삶이 기도가 되도록 대신덕적 삶을 살아가며 그분과 자주 정담을 나누는 우정의 친밀함 가운데 자매들간의 복음적 평등의식과 솔직하고 성실한 형제 생활, 전례와 성사, 노동의 일상성을 통해 성화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루 일과 중 성녀의 독창적인 개혁의 특징은 두 차례의 묵상기도와 두 차례의 공동 휴식 시간입니다. 레크리에이션을 통한 긴장 완화는 자신에게 솔직하고 타인에 대한 비난을 내려놓게 하며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이 시간은 묵상기도를 위한 새로운 힘을 얻게 해 줍니다. 여러 세대가 모여 대가족과 같은 현 공동체의 다양한 경험과 세대별 차이점은 테레사의 카리스마 안에서 참으로 풍요롭고도 ‘알록달록한 일치’(친교로 하나되어)를 살아가게 합니다.

늘 반복되는 그래서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나게 되는 각자의 한계점, 서로 다름의 양극성, 바로 그 자리에 십자가의 주님과 함께 끝까지 머물 때 성체 안에서 인간에게 먼저 다가오시는 ‘용서 청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매일 조금씩 배워가게 됩니다. 공동체가 와해되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해 가는 이 시대에, 익숙해져 버린 내 안의 피상성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시대를 앞서서 공동체의 친교를 통한 성화의 길을 보여주신 성녀 데레사의 탁월한 감수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충분히 공감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작은 공동체는 ‘봉쇄’되어 있고 ‘소수’라는 조건들이 때로는 불편해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보호막이 되어 줍니다. 성녀 데레사는 이 진리 안에 거니는 것이 바로 참된 겸손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 말씀으로 일치하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으로 하느님과의 친교를 살게 될 때 서로의 허물과 부족함은 오히려 형제들과의 참된 친교를 살아가게 하는 디딤돌이 됩니다. 그래서 첸치니 신부님은 자신의 악을 하느님 앞에서 인정하고 형제들에게 고백할 때 우리 안에 있는 선, 우리 주위에 있는 선을 발견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한 유기적 비전은 또한 악과 선을 융합시킨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비추고 변화시켜서 인간적 친교만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성인들의 친교이자 죄인들의 친교가 되게 한다.” - 『헤르몬산의 이슬처럼』

 

세례를 통해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 부름받은 우리 모두는 참으로 ‘모든 것에서 선을 끌어내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에 초대되었음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교구장님의 사목 지침은 가르멜 수도자로서의 소명, 즉 그리스도와의 더 깊은 친교의 부르심에 대해 자각하고 되새기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첫 토요일 대림 시기 행사 때도 교구에서 보내 주신 「친교로 하나되어」를 가지고 성찰과 공동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① 우리는 공동체 자매들의 외적 모습에 머뭇거리지 말고 하느님이 머무시는 그 존재의 중심에까지 침투해 들어가도록 초대받았습니다.

② 애덕이라는 미명하에 진리를 희석시키지 마십시오.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십시오.

③ 예수님보다 더 좋은 것을 이웃에게 전할 수는 없습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머무르시기를 청하십시오.

④ 가르멜인으로서 삶의 의미는 영혼들에게 하늘나라를 일깨워 주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성녀 테레사처럼 주님의 자비로 고무된 영혼 구원의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있습니까?

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우리는 주저 없이 용서를 청합시다. 그리고 먼저 용서합시다.

이야기를 마감하면서 저희 수도원 설립자 엘리야 테레사 수녀님의 일화를 들려드립니다. 수녀님이 한국어학당을 다니실 때의 일입니다. 길을 가시는데 두 분의 아주머니가 크게 다투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답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몰라도 분위기상 그냥 지나치기 안쓰러웠던 엘리야 수녀님은 두 분께 조용히 다가가 어눌한 발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좀 천천히 말해 주세요. 제가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좀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러자 두 분의 아주머니는 엘리야 수녀님의 유머러스한 재촉에 서로 마주 보고 웃느라 다툼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자비의 하느님!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상처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이 세상을 성심 안에 맡겨드리오니, 주님의 온유와 겸손에서 나오는 참된 평화가 저희 공동체로부터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미얀마에 임하게 하소서. 아멘!”

 

* 대구가르멜수녀원은 스페인 말라곤 가르멜수녀원(예수의 대 테레사 성녀 창립지)에서 진출한 오스트리아 마리아젤 가르멜이 제7대 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의 요청으로 대구교구의 사제 성화와 영적 성장을 위하여 1962년 9월 14일 설립했다. 이후 1996년 안동교구에 상주가르멜수녀원을 분가시켰고, 많은 신자들과 교구의 도움으로 2018년 수도원 재건축을 했다. 보편교회와 교구 성화를 위해 제병제작과 기도사도직에 헌신하며 형제적 친교를 살아가고 있다.

http://www. carmel. kr. / 대구가르멜수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