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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
구원의 빛


글 김삼화 아눈시앗따 수녀|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이번 달에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 브라디 바스(Bradi Barth, 1922~2007)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녀의 그림은 이미 유명해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저는 그녀의 그림을 볼 때마다 언제나 꾸밈이 없는 순박함과 정갈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은 믿음 안에서 길어 올린 신앙의 빛깔이고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그녀의 그림을 오래 접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스위스 생갈에서 사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학업을 마친 후 유치원 교사 교육을 받았고,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시험에 합격합니다. 1946년부터 벨기에 겐트 예술 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하며 어릴 때부터 사랑한 그림의 꿈을 이룹니다. 그녀는 벨기에에 정착하면서 모든 노력을 그림에 쏟았습니다. 또한 항상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신의 선물로 여겼기 때문에 작품 활동의 마지막 20년은 종교 예술에 헌신했습니다. 그녀는 스위스 베네딕도 수도회를 대표하는 아인지델른 수도원의 ‘블랙 마돈나’를 보고 크게 영감을 받아 하느님의 어머니가 그녀의 중심 주제가 되어 가장 유명한 마니 피캇과 로사리오 신비를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의 삶을 다룬 작품들 중 십자가의 길은 예술적 창의성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2000년 브라디 바스는 그림의 수익금을 복음화 지원에 쓰기 위하여 가톨릭 선교 프로젝트 재단을 만듭니다. 현재 대부분의 작품은 재단을 운영하는 존 프레베의 개인 소유로, 앞으로도 계속 작가의 소명을 완수해 갈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을라가 주님께 바쳤다.”(루카 2,22)

브라디 바스의 작품 중 ‘주님을 성전에 봉헌’하는 그림을 소개하려고 준비하면서 뜻밖에 마음의 위로를 얻었습니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수도자인 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 적이 있어 당황스러웠지만 절박한 친구의 사정이 딱해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되어 한동안 심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새롭게 다가온 것이 있는데 바로 요셉 성인이 들고 있는 두 마리의 비둘기와 시메온의 미소였습니다. 비둘기는 정결례 때 제물로 일 년 된 어린양을 바쳐야 하지만 형편이 안 될 만큼 가난한 경우에 바치는 제물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셨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께서 가난과 병으로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큰 위로로 다가오기는 처음입니다. 또한 하루하루 절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왜 예수님이 큰 기쁨이고 희망이 될 수밖에 없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안은 시메온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절제된 엷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약속을 오랜 시간 기다리며 온 삶을 기도와 거룩한 생활로 봉헌한 사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메온과 한나 예언자의 진솔한 기다림의 삶이 수도자들의 삶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오랜 기다림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은 보는 사람도 함께 감사드리게 합니다.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시메온의 날카로운 예언을 마음에 새기신 성모님은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시고, 넉넉지 않지만 온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고 맞아들이는 모습이 충만한 기쁨과 거룩함으로 가득 차 보입니다. 아마 이것은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비우시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오시면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구원의 은총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소박하고 진솔한 삶을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계시는 구원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믿고 희망하는 것이 기쁨이 되고 평화가 되는 참된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