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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서 온 편지
한국어로 해도 괜찮아요(用韓語敬世沒關係 : 용한위쭈어예메이꽌시)


글 강우중 베르나르도 신부|타이중교구 선교사목

제가 타이완에서 보낸 어학기간은 1년 가량 됩니다. 이 시기는 언어센터에서 수업만 듣는 것이 아니라 교목처와 연계되어 사제로서 도와야 할 일이 있을 때 협조하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험 기간 전 학생 축복, 기숙사 건물 축복, 성시간 주례 등이 있습니다. 물론 모두 중국어로 해야 하지요. 말하자면 언어를 좀 더 빨리 습득하기 위한 실습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수업 후 곧장 도서관에 가서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는 저로서는 이러한 일들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언제나 ‘제가 준비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일을 좀 미뤄 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의 마음을 알아 주셨을까요? 그렇습니다. 그 분께서는 저의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바람을 이루어 주기까지 하셨지만 그 방법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어느 날 교목처가 아닌 다른 곳에서 미사 주례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칭수이천주당, 바로 본당이었습니다. 당시 본당 신부님이 중요한 일이 있어 평일미사를 대신해 줄 사제를 찾고 있었는데 그게 저에게 올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지요. 물론 다른 곳에서 대신해 줄 사제를 찾는 것 보다 바로 옆에 있는 제게 부탁하는 것이 신부님으로서는 비교적 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너무 부담스러워 용기가 나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본당 신부님은 저에게 다시 한번 부탁하며 말씀하셨습니다. “用韓語敬弼撤世沒關係!(용한위쭈어미사예메이관시!, 한국어로 미사 해도 괜찮아요!)” 연로하신 본당 신부님의 표정은 마치 ‘미사를 대신 주례할 수 있는 사람이 신부님 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미사를 취소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더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평일미사는 많아야 한두 사람이 참례하거나 사제 홀로 미사를 주례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한국어로 미사를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어 미사가 저에게나 교우들에게 유익하거나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했을 때 저를 위한 편의 밖에 되지 않겠다는 판단에 중국어 미사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미사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이틀 정도 있었고 미사 통상문은 한국에 있을 때 대만 선생님의 육성으로 녹음된 자료가 있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기도문과 복음은 스스로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우선 모르는 단어부터 하나씩 찾아내어 발음과 한국어 뜻을 적고 어법을 이해하는 것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또한 경문이 입에 붙을 정도로 읽는 연습은 더 오래 걸렸습니다. 이렇게 이틀 밤낮을 준비한 미사는 어땠을까요? 첫미사 때보다 더 떨렸습니다. 경문을 읽을 때마다 입술은 바짝 마르고 두 손은 파르르 떨렸습니다. 심하게 긴장하다 보니 몇몇의 단어가 읽히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때 미사에 참례한 교우 중 한 분이 그 단어들을 대신 읽어 주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미사는 잘 마무리했지만 뿌듯함보다는 부끄러움과 피곤함으로 얼른 방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생각 뿐이었습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저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본당에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본당 신부님은 가장 먼저 저를 찾으셨고 그로 인해 자주 평일미사를 주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두 명에 불과했던 참례자는 현재 다섯 명에서 열 명 사이를 오갈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목처나 타 본당의 요청에도 응할 수 있을 만큼 저의 삶은 변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인간적으로 걱정되고 부담스럽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의 바람은 그 부르심을 조금이나마 미뤄 주시거나 아니면 그 부르심이 제게 오지 않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어떻게든 저를 당신의 도구로 만들어서 쓰시고자 하심을 이번 일을 통해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분의 부르심에 여전히 걱정과 부담이 되지만 적어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할 정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런 생각을 요즘은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지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우리 모두 용기 있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삶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