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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구대교구 순교자 현양 기행문 공모전 ⑥ - 우수상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글 김현섭 요셉 신부|교구 비서실장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게 잘 살 수 있는 것일까?”

항상 궁금하다. 주어진 소중한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은 나의 평생 화두이며, 많은 이들 또한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2004년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해 봄, 한티순교성지 영성관에서 1년여간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봄이었지만 팔공산 높은 곳에 있는 한티의 공기는 꽤 쌀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티에서의 삶은 고등학교 때까지 살아왔던 것과 많은 부분에서 달랐고 쉽지 않았다. 하지만 주님께서 불러 주셨고, 이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내 곁의 형제들이 있었기에 따뜻한 마음과 함께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신학교 생활은 공동생활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함께 기도하고, 공부하고, 밥 먹고, 일하면서 서로의 다름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또 채워 나가면서 주님께서 몸소 보여 주셨듯이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함임을 나는 크게 받아들였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의 부족함에 넘어지고 또 넘어졌지만 그럴 때마다 주님께 이끄심을 청하며 첫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노력했다. 이처럼 한티에서 시작된 나의 스무 살은 작지만 소중한 바람을 이루기 위해 하나씩 실현해 나가는 가슴 따뜻한 곳으로부터의 시작이었다.

 

고(故)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한티에 피정의 집을 지었고 십자가를 세웠다.”고 말씀하셨다. 2022년 여름에 한티피정의 집에서 사제 연중 피정을 할 소중한 기회가 생겼다. 오랜만에 한티에서 며칠을 보낼 생각을 하자 피정 전부터 설레는 한편 한티에서 처음 살 때 가지고 있던 그 마음을 간직하며 살고 있는지 돌이켜 볼 수 있었다.

 

“나는 주어진 이 소중한 삶의 의미를 잘 찾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삶의 의미는 이곳 한티에서 순교하고 묻히신 분들, 바로 ‘이 땅에서 가장 잘 사신’ 우리 순교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티는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순교자들과 이름 없는 순교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의미뿐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비우고 뉘우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한티에 묻히신 하느님의 종 서태순(徐泰淳) 베드로는 우리 신앙의 삶에 위안이 되는 분 중 한 분이다. 우리는 그분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의 가족들은 일찍부터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피신해 다니면서 생활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교리를 실천했다. 그러나 경신박해(1859~1860) 때 체포되어 대구 진영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서태순 베드로는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지만 교회 서적을 바치지도 않았고, 아무도 밀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형벌이 계속되면서 팔다리가 끊어질 지경에 이르고, 여섯 달 동안 고통스러운 옥살이를 하게 되자 마음이 약해져 배교를 하고 석방되었다. 이후 서태순 베드로는 여러 해 동안 냉담 상태로 지내면서 교회를 멀리했다. 그러다가 이전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회두하여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면서 ‘다시 체포된다면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순교하겠다.’라는 원의를 다지며 순교를 간절히 원했다. 다시 교회의 품으로 돌아온 그는 가족을 데리고 대구를 떠나 문경 한실 교우촌으로 이주하여 신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러던 중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세 차례에 걸친 문초와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나는 천주교 신자이므로 결코 신앙을 버릴 수 없소.’라며 굳게 신앙을 증언했다. 함께 투옥된 김 아우구스티노, 서유형 바오로, 박 루치아 등과 상주 진영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시신은 1867년 한티에 안장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함께 신앙생활을 한 서태순 베드로는 친교를 통하여 복음의 기쁨을 함께 느끼고 나누며 살아왔기에 박해 속에서도 신앙인으로서 꿋꿋하게 산 것으로 보인다. 요즘 우리 가정 안에서는 소중한 신앙의 선물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이 소극적인 경우가 많은데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처럼 가정 안에서 함께 신앙을 공유하고 살아간다면 서태순 베드로의 가정과 같이 더욱 친밀해지고 그로 인해 기쁨은 더욱 크게 나누고 어려움은 더욱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주변을 둘러봤을 때 여러 가지 이유로, 또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미사에 참례하고 주님 안에서 서로 친교를 나눌 때 우리 신앙은 돈독해지고 더욱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많은 이들이 그러지 못하고 있음이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 순교자들이 지킨 믿음과 닮은 것 같아 많은 것을 느끼며 배우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2티모 1, 13) 살아간 신앙 선조들의 길을 함께 걸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삶을 복음의 기쁨으로 나누면서 의미 있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