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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서품 10주년 기념 성지순례기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글 김요한 세례자 요한 신부|볼리비아 선교사목

“겁내지 말고 다리를 펴봐.” 이 말은 성경의 구절이 아니라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다이빙을 배울 때 어느 신부님이 해 준 말입니다. 덕분에 처음에는 물에 떨어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철퍼덕 떨어졌지만 연습을 할수록 다리가 펴지고 매끄럽게 물에 들어가는 것을 느꼈답니다. 성지순례 후기 글을 부탁받고 일정을 떠올려 보니 먼저 그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 시간과 갈릴래아 호수 물결이 제 몸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은 사목지인 볼리비아 구원자 그리스도본당으로 돌아와 밀린 업무들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업무야 특별할 것 없이 본당의 부서진 곳들을 수리하고, 땅문서 작업을 이어가며 가정 축복식, 병자방문, 미사 집전 등 볼리비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8년째 이곳에 살다보니 이곳 리듬이 더 익숙하고 한국 신조어들은 제게 더 낯선 것이 되어갑니다. 차이가 나는 것은 단순히 시차만이 아닙니다. 여기 말과 문화를 배울 때도 두려움을 떨치고 여러 번 몸을 던져야 했기에 이미 제 몸에 이곳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2012년 6월 대구대교구 사제서품반 12명은 성직자국 서보효(라이문도) 국장신부님의 동반으로 9박 10일 동안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카르멜산-나자렛-카나-갈릴래아-쿰란-사해-예리코-베타니아-베들레헴, 그리고 예루살렘을 함께 걸었습니다.

성지순례 초반에는 헛헛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그 시대의 풍경을 상상하고 갔는데 우리를 맞이한 것은 주로 20세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초기 집터 및 동굴터 위에 지어진 건물, 그리고 전쟁으로 부서진 그곳 위에 새로 세워진 건물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로마에 의해, 십자군에 의해 건물이 세워지고 이슬람 세력에 의해 건물이 무너지고, 다시 그 위에 성지복구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겐 주도권 다툼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 그러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성지순례 막바지에는 이런 묵상이 떠올랐습니다. ‘이 덧칠의 역사는 우리 신앙의 자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 신앙의 역사 안에서도 기존의 터 위에 새로운 건축물이 지어졌다 무너지고 그 위에 다른 건축물이 자리잡기를 반복하니까.’ 나의 신앙에는 처음에 받았던 그것을 보존하는 것만이 아니라 안주하고 실수하는 자리, 새롭게 알아듣고 새롭게 태어나는 자리가 덧대어지기 때문입니다. 켜켜이 쌓인 그 사이에 하느님은 당신 뜻의 큰 그림을 드러내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방문한 장소들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예수’라는 분이십니다.

주류 세력이 머물던 예루살렘이 아니라 변방 갈릴래아 호숫가 고을을 다니시며 하느님 아버지를 말하고, 사회에 속하지 못하던 이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시고, 부정하다고 내쳐진 아픈 사람들의 손을 잡으시던 분. 그분도 이곳의 타는 태양 아래 땀을 흘리시고 목마름을 달래려 우물을 찾으시고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에서 멱을 감지 않으셨을까 상상해 봅니다. 어부인 제자들에게서 헤엄치는 법을 배우시진 않으셨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과 함께 말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제자들에게 당신을 새겨 주셨습니다.

‘라떼는 말이야.’ 라는 말이 유행했던가요. 내가 겪어본 일은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타는 태양 아래 걷는 힘듦을 우리는 압니다. 그처럼 소외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과 한 식탁에 앉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도 압니다. 내 신앙에는 이렇게 두려움이 덧칠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짤막한 삶으로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서는 몸을 던져야 한다고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이리 재고 저리 재는 동안 내 다리는 굽어 버리고 뛰어들지 않을 궁리부터 하게 됩니다.

 

그분의 자취를 느끼고 내 삶의 자리로 돌아왔건만 아직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제 두려움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더 다가가지 못하고, 더 내어주지 못하고 선(線)을 긋는 제 모습입니다. 카파르나움 고을에 들렀을 때 호숫가에서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느낌을 적어 본 것을 공유합니다.

 

 

카파르나움 호숫가에서

 

주된 무대 카파르나움

걷고 말하고 가르치고

먹고 나누고 주무시고

그리 그분은 살아가셨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철썩이는 물소리에서

오래전 그분이 들으셨던

그 소리 나도 들어본다

 

걸으신 그 길 들으신 그 소리

내 발과 내 귀로 좇아보아도

가닿지 못한 내 속내는

단지 이천 년 시간 탓은 아니다

 

마음이 내 영이 내 몸이

이미 담은 하느님 소리를

이미 부는 하느님 바람을

알아채지 못한 탓이다

 

이런 저의 부족함에도 그분은 그 위에 새로운 성전을 지어 주시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선교 임기를 살아가겠습니다. 후회나 책망보다 새로 지어 주신 그 자리에서 기쁘게 살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뜻 때문에 몸을 던지신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더 닮고 싶습니다.

 

이번 순례 동안 기도로 동반해 주신 교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동료 사제들과 함께 복된 순례를 허락해 주신 조환길 대주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