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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
빛은 생명, 사랑, 기쁨, 평화


글 김삼화 아눈시앗따 수녀|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우린 영롱한 한 알의 빛이 되려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한 알의 빛으로 떠날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빛은 생명이고, 생명은 사랑, 사랑은 기쁨, 기쁨은 평화로 이어지죠. 자성의 길을 통해 빛의 길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게 제 마지막 걸어가는 길일 겁니다. 빛으로 받은 모든 사랑을 세상에 잘 회향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국적인 자연 채색의 대가로 추상예술의 대작들을 남겨 세계 화단에 ‘빛의 구도자’로 불렸던 방혜자(1937~2022) 화백은 서울 근교에서 태어났다. 방 화백은 서예를 즐기던 어머니와 화가인 외할아버지, 시인인 사촌 오빠 등 가족의 영향으로 감수성을 키웠다. 하늘과 별, 나무와 꽃, 바람과 물소리 등을 소재로 시를 짓던 그는 고등학교 때 당시 미술교사였던 김창억(한국 추상미술 1세대 화가)으로부터 그림에 대한 소질을 인정받았다. “그림은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것”이라는 격려에 힘입어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1961년 국비장학생으로 프랑스 파리에 가서 유화, 프레스코, 이콘,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기법을 배웠다. 방 화백은 타국 생활을 통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깊이 인식하면서 동양의 아름다움과 우리 문화 전통 기법을 재발견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평생 빛을 연구하는 화가의 삶을 살았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며, 가장 자기다운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방 화백이 생각한 아름다움은 ‘한’이 아닌 ‘밝음’이었다. 많은 사람이 한국미에 대해 ‘한’이 깃든 아름다움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내 작품은 우리 민족의 밝고, 명랑하고, 기쁜 면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이 한국인의 특성이다.”

 

방 화백은 56년 동안 붓을 놓은 적이 없을 정도로 수행처럼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내면의 미소를 배우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림 창작은 삶이며 나의 모든 것이다. 우리 인간의 가장 깊은 속에 닿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미술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방혜자 화백은 ‘아득한 태고에서부터 생명의 원천이 된 빛’을 화면에 담고자 했다. 빛의 따사로움과 찬란함, 영원함을 찾아 나서면서 ‘세상에 빛이 아닌 것이 없다.’는 실상을 깨치게 된다. 우주 삼라만상이 빛이자 자비이며 광명이었다. 이 같은 깨달음을 ‘한 획을 긋기 위하여’란 시에서 노래하고 있다.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온몸과 마음으로 그려나가면

색과 색이 어울리고

획과 획이 춤추는

자유의 공간을 이룬다.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무한 천공에

불멸의 한 획을 긋는다.

 

 

전심전력을 기울여 채우고 비우고 버리는 가운데 드러나는 불멸의 한 획인 것이다. 초기에는 수묵화처럼 묽은 색감으로 빛의 본성을 표현했지만 고국에 돌아와서는 한지 위에 천연염료를 칠하고 마르고 두드리기를 반복하면서 앞뒤로 물감이 배어나 마치 스스로 빛을 머금고 반사하는 듯한 독자적인 양면 그림을 탄생시켰다.

 

방 화백은 사물을 뚫고 들어가면 그 속에 금강석같이 빛을 발하는 입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방 화백의 그림으로 우주의 빛을 강의하는 천체 물리학자 다비드 엘바즈(David Elbaz)가 있다. 그는 허블 망원경을 통해 본 우주가 방 화백의 그림과 정교하게 닮았음을 확인하고 충격을 받았다. 어떤 면에선 방 화백 그림이 더 깊이 있다고 밝힌 엘바즈는 강의에서 망원경으로 찍은 우주 사진과 방 화백의 작품 이미지를 교차한 영상물을 만들어 교재로 사용했다.

방 화백은 불교와의 인연으로 불교에 관련된 책을 번역하거나 그림을 그렸고, 프랑스에서 가톨릭을 접한 후 1964년 세례를 받고 두 개의 종교에 마음을 담았다. “두 종교가 사랑을 향한 하나의 길로 느끼게 된다. 또한 종교뿐만 아니라 예술까지도 사랑을 닦는 길임을 절실히 느끼며 예수님의 사랑, 부처님의 자비, 광명, 그 가르침을 더욱더 속으로 익혀서 두 손을 모아 하나로 합치듯 마음을 크게 열고 싶다.”, “흔히 추상화는 어렵다고들 한다. 그것은 그림을 보는 이가 무엇인가를 알려는 의도를 가지고 보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볼 줄 모르고 지식으로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마음은 모두 안다는 것을 떠나 완전히 자신을 잊게 되는 경지에서 창작되어야 하므로 나는 예술을 도(道)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