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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서 온 편지
많은 열매를 맺기 바라며①(시왕지에추헌둬궈슬)


글 강우중 베르나르도 신부|타이중교구 선교사목

우리는 지난달부터 주일 복음으로 여러 비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비유의 대부분은 밭을 소재로 삼은 내용이 주를 이뤘고 마치 ‘이제는 결실을 맺을 때가 되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이렇듯 복음은 올해도 이미 절반 이상이 지나갔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선교생활 또한 이제는 결실을 보여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여러분은 바라는 일을 어떻게 계획하고 결실을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지요? 저에게 있어선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어찌 보면 선교생활에서 얻은 결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본당 신부로서의 결실과는 다른 성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아직 이루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달에 올린 본당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 그러하지요. 뿐만 아니라 본당 설립 이래로 사목회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 채 본당이 운영되다 보니 체계를 잡아나가는 것 또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본당 신부로서 결실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동체 전체가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타이완에 처음 온 후 2년간 본당의 성탄 행사를 지켜본 것에서 시작됩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교우들이 무엇을 위해 행사를 하는지 주제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동네 주부 댄스동아리 몇 팀을 초청해 춤을 추게 하고 교우들은 그저 구경꾼으로만 머물다가 미사에 참례하고 작은 선물 하나 받는 것으로 행사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우들 스스로 성탄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국에서의 본당 행사 경험을 살려 어떻게 하면 교우들이 주도적으로 행사를 구성하고 준비해 진행할 수 있는지 알려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선 앞으로의 성탄 행사가 외부에서 온 사람들로만 가득한 모습은 배제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놀이에 그치고 말 성격의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도 성탄이 가진 메시지를 잘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교우들에게 숙제로 주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교우들이 성탄을 맞이하는데 도움이 될 자그마한 공연 프로그램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앙 퀴즈, 교우들로 구성된 무용팀의 공연, 합창, 연극 등 소박한 규모에 한해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대림 시기 동안 각자 구성된 팀에 합류해 연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우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 더불어 행사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모두 함께 구유 안으로 들어가자!’라는 주제를 정하고 성탄 공연이 자연스레 미사와 연결될 수 있도록 구유를 이용해 무대를 구성하고 제작했습니다. 이렇게 성탄이 오기까지 교우들은 각자 참여할 프로그램에 따라 열심히 연습에 임했습니다. 저 또한 무대 설치를 위한 도안을 그리고 몇몇 교우들과 함께 재료와 성상들을 구매해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이 준비 과정에서 교우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참여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과 부모들은 연극의 주요 등장인물을 맡고 무대 배경이 될 그림을 채색하고 설치까지 하는 열성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무대가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에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무대 위를 뒹굴면서 공간을 만끽했습니다. 또한 교우가 아닌 이웃들도 한번도 보지 못한 풍경에 관심을 보였고 심지어 동네 길고양이들도 우리가 꾸며 놓은 무대에서 따뜻하게 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 결과 행사는 무사히 잘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무대인 연극은 그 끝이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성탄 전야 미사에 입당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입당을 위해 성당 입구의 문이 열리는 모습은 마치 마구간의 문을 열고 구유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성탄 행사는 무대 공연과 전례가 자연스레 어우러졌고, 남은 성탄 기간 중에도 교우들은 무대가 되어준 구유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등 모두가 기억에 남을 만한 일로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본당이 변화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보면서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열매를 맺는 발전을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이 시간 동안 무대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린 길고양이들을 소개하며 다음 편지로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