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카리타스 사람들
조금은 특별한 우리들의 이야기


글 박향숙 그라시아|성요한복지재단 일심재활원

 

Episode 1. 출근 투쟁

동촌역 인근 장애인보호작업장에 취업한 일심재활원 입주자 오OO 씨는 출퇴근 연습을 위해 담당 교사와 함께 반야월역으로 향했습니다. 앞으로 혼자서 이용할 ‘지하철’이라는 교통수단에 익숙해지기 위해 오OO 씨와 교사는 주말 내내 출퇴근 연습을 합니다. 지하철토큰을 뽑는 일에서부터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일까지, 이 모든 것이 처음인 오OO 씨에게 직장에 도착하기 위한 여덟 정거장의 지하철역은 굽이굽이 골짜기 같은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다가왔을지 모릅니다. 교사 없이 혼자 타 보라고 하면 “안 할래요, 무서워요.” 하면서 출구 밖으로 올라가는 것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입구와 출구를 찾다가 성공했을 때는 “내, 내가 찾았어요, 내가.”하며 자신감을 드러내는 오OO 씨 모습에서 저희도 작은 희망을 봅니다.

주말 출퇴근 연습을 끝내고 드디어 출근 당일, 담당 교사는 오OO 씨 혼자 출근하도록 안내한 후 몰래 뒤를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빠른 걸음의 오OO 씨를 놓친 교사는 초조한 마음에 작업장으로 전화를 했고, 잘 도착했다는 답변을 듣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다음 날 출근길에도 몰래 오OO 씨를 뒤따라간 교사는 역으로 내려가 곧장 역무실로 들어간 후 역무원과 나오는 오OO 씨를 볼 수 있었습니다. “동촌역에 가려면 이 방향에서 타면 되요?”라고 묻는 모습을 보며 잠시 흐뭇했습니다. 그렇게 지하철을 잘 타고 가는 듯 했는데 그만 동촌역이 아니라 ‘방촌역’에서 하차합니다. 몰래 뒤따르던 교사가 동촌역에서 내려야 한다고 말한 후 함께 다시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방촌역’에서 내리고 타기를 반복하는 출근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어디서 내려야 해요?”, “동촌역! 동촌역!”을 외치던 나날을 보내다 드디어 혼자 출근하기로 한 대망의 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니 덩달아 바빠진 오OO 씨가 계단에서 구를 뻔했지만 ‘동촌역’이라는 방송이 나오자 스스로 내려 직장으로 향하는 모습에 박수가 절로 나옵니다.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 출근 투쟁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도 오OO 씨는 ‘동촌역’으로 출근합니다.

 

Episode 2. 어떻게 알았을까?

의사표현이 어려운 입주자 전OO 씨는 몇 해 전까지 재활원 식당 앞 ‘행복집’에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양사인 저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조리사 선생님들과도 친분이 돈독합니다. 간식을 나누거나 부식을 검수할 때면 늘 와서 도와(?)주었고, 출근이나 퇴근을 할 때면 신발을 꺼내주거나 가방을 새로 매주곤 했습니다. 그와의 소통은 출퇴근할 때마다 “OO 씨, 안녕!” 하는 인사말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전OO 씨가 재활원을 떠나 인근 아파트(그룹홈)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요즘 원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재활원으로 다시 출퇴근하는 전OO 씨가 하루에 세 번 식당으로 찾아와 말없이 저희에게 껌을 몇 개씩 주곤 합니다. 아마도 전OO 씨 가방에는 항상 뜯지 않은 껌이 10통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리사 선생님들이 “이제 더워지니 껌 대신 아이스크림을 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농담을 건넨 다음날 점심시간에 아이스크림 4개를 가방에서 꺼내 주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비록 의사소통의 표현은 매우 서툴지만 아이스크림을 알아 들으셨구나.”, “말로 직접 표현은 하지 못해도 듣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셨구나?” 등등 아이스크림 덕분에 식당 안에는 작은 논쟁이 벌어졌답니다. 껌이 아이스크림으로 변모된 기적(?)의 내용을 우리는 모르지만 하느님은 아시겠지요. 단지 보고 느끼는 그만큼 아니면 보고 싶고 느끼고 싶은 만큼 입주민 당사자에 대해 알아가고, 알 수 있는 매우 제한적인 부분이라는 것 정도입니다.

오늘도 책상 앞에 놓인 전OO 씨가 주고 간 껌을 보며 잠시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 여전히 있구나. 그것도 가까이에….’ 어떻게 바라보고 동반하는가에 따라 문제 행동이 될 수도, 훈훈한 감동을 주는 사랑의 표현이 될 수도 있음을 전OO 씨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