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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의 신비를 살아가는 사람들 - 가톨릭 푸름터
코로나가 가져다준 선물! 미혼모 양육 멘토링 사업 ‘친정엄마’


글 김순호 마리아|지산성당

어린이회관 맞은편 복잡한 도로를 벗어나면 아파트 숲 사이에 한적한 주택가가 나옵니다. 그 골목 중간쯤에 여름이면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초록빛 정원이 아름다운 가톨릭 푸름터가 있습니다. 복잡한 남산동 골목길을 지나 성모당에 들어갈 때처럼 지금도 푸름터에 가면 딴 세상에 온 듯 마음이 포근해지고 근심이 사라집니다. 제가 푸름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17년 봄입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 2시에서 4시까지 청소를 하고, 시간이 되면 아기 목욕을 돕거나 엄마들을 대신해 아기들과 놀아주는 봉사를 했습니다. 저처럼 푸름터에는 매일 다양한 분야에서 시간과 마음을 나누는 봉사자들이 많습니다.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1년에 한 번 정도지만 보이지 않게 재능과 시간을 나누고 가는 많은 봉사자 덕분에 푸름터는 늘 충만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 당당히 맞서 홀로 아이를 낳고, 양육을 결심한 용감한 엄마들과 사랑스러운 아기들, 그리고 친정엄마의 마음으로 품어 주는 원장님과 복지사 선생님들 덕분에 ‘푸름터’라는 이름처럼 늘 푸르고 생기 넘치는 곳입니다.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진자가 생기고, 대구는 물론 전국적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늘면서 푸름터의 문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굳게 닫혔습니다. 저 역시 최소한의 바깥출입만 하면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푸름터 복지사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미혼모 양육 멘토링 사업 ‘친정엄마’를 함께해 보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잠시 고민했지만 사업 취지가 좋고, 친정엄마가 되는 간접 체험을 한다는 마음으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6개월 프로젝트라는 생각에 아무 준비 없이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선물!” 저는 이 한마디로 미혼모 양육 멘토링 사업 ‘친정엄마’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제 4년 차에 접어든 이 사업은 코로나19로 모든 성당 문이 닫히고, 미사도 할 수 없고, 만날 수도 없는 2020년 6월에 정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양육 경험이 있는 봉사자와 홀로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엄마를 일대일로 맺어주고, 한 달에 한 번 자유롭게 만나 두 시간 정도 함께 보내면서 다양한 고민과 정보를 나누는 프로그램입니다.

취지가 좋았지만 ‘누군가의 멘토가 되기에 적합한가?’ 라는 고민에 다른 봉사자들처럼 선뜻 나서지 못한 기억이 납니다. 5월에 참가 신청서를 내고, 6월에 담당 복지사님의 주관 아래 원장님과 푸름터 관계자들과 함께 다섯 명의 멘토와 다섯 명의 멘티, 그리고 다섯 명의 예쁜 아이가 저녁에 모여 푸름터 강당에서 발대식을 했습니다. 서로의 짝꿍과 나란히 앉아 사업의 취지와 함께 앞으로 멘토와 멘티가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할 사항들을 듣고 첫 번째 만남의 약속을 잡았습니다. 4명의 엄마는 푸름터를 떠나 2차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저의 멘티만 푸름터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멘토와 멘티의 매칭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최상의 조합으로 짝지었다고 합니다. 아이의 장애에도 홀로 양육을 결심하고 열심히 키우고 있던 제 멘티는 작고 연약해서 볼 때마다 안쓰러웠습니다. 그 해의 뜨거웠던 여름만큼 힘든 일과 슬픈 일을 연달아 겪으면서도 꿋끗하게 이겨낸 멘티가 대견했습니다. 짧은 6개월 동안 열 번 정도의 만남에서 멘티가 슬프거나 힘들 때 함께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시외 지역으로 2차 시설을 선택하게 되어 더이상 멘토링을 할 수 없게 됐지만 지금도 종종 연락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1년 차에 참여했던 멘티들의 반응이 좋아 2년 차 때는 멘티가 늘어 8명의 멘토와 멘티가 만나 한 해를 보냈습니다. 새로운 짝꿍을 만난 저는 지금까지 3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스물두 살에 만나 이제 스물네 살이 된 멘티는 여섯 살 난 아들의 엄마입니다. 네 살에 만났던 아이가 이제는 씩씩한 유치원생이 되어 엄마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 부르면 정말 딸 같습니다. 가끔 노느라 바빠 약속을 잊어 먹기도 하고, 철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아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 천상 엄마입니다. 요즘 들어 멘티가 저와 있는 시간만큼은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닌 스물네 살의 예쁜 이십 대 ○○였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가 맺어 준 소중한 만남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는 사이가 되고 두 달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어색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사이가 됐습니다.

그동안 양육 멘토링 사업은 정기적인 간담회와 최종 평가회 등을 통해 푸름터 관계자들과 멘토 간에 의견을 나누며 해를 거듭할수록 짜임새 있게 변모해 왔습니다. 코로나19로 많은 곳이 문을 굳게 닫았을 때 가톨릭 푸름터는 봉사자를 파견하는 방법으로 어렵고 외로운 시기에 ‘서로를 향해 서로 함께하며 서로 기도해 줄 수 있는 친교의 장‘을 만들어 줬습니다. 특별히 2년 차에는 정말 친정집 같은 곳이 생겨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아이와 편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 그곳은 엄마들의 자조 모임으로 이용되는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멘토와 멘티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가톨릭 푸름터에서 머물다 간 엄마들이 생명을 지켜 낸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아이와 기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또 마음이 헛헛할 때 편하게 찾아올 수 있도록 가톨릭 푸름터가 늘 푸르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