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친교의 해를 위한 생태영성
연대


글 송영민 아우구스티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지난 창조 시기(9월 1일~10월 4일) 동안 ‘퇴근길 생태신학’ 프로그램에 함께했던 분들과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를 매일 바쳤습니다. 몇 년 전부터 창조 시기가 되면 「찬미받으소서」 회칙 공부 모임에서 이 기도를 했는데 이제 연례행사가 된 것 같네요.

사실 그리 특별한 이벤트는 아닙니다. 창조 시기를 의미있게 지내고자 밤 9시가 되면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를 하고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기는 정도이지요. 어떤 분들은 “찬미받으소서!”라고 말하고, 바쁜 분들은 “아멘!”이라고도 합니다. 기도문에서 그날 마음에 남는 구절을 메시지로 남기는 분, 개인적인 소감을 전하는 분도 있습니다. 무슨 재미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도와 메시지를 나누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어떤 울림이 있어 좋습니다.

 

올해 창조 시기 기도에 함께하면서 저는 새삼스레 ‘우리’라는 말을 자주 되뇌곤 했습니다. 저마다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잊지 않고 같은 지향의 기도를 바치는 그 시간을 통해 함께하는 이들과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말은 ‘우리’라고 하듯이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응원하다 보니 우리네 생태영성살이도 좀 더 든든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도한다고 기후 위기가 당장 극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를 통해 함께할 때 지구 공동체를 돌보는 일에도 용기있게 나설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혼자 가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이 더 든든하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오늘날 가속화되는 기후 변화의 위기를 넘는 힘은 ‘우리의 연대’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구적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몇몇 전문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의 참여가 필요하고, 서로 손잡고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 우리는 생태 환경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게 되고, 공동의 집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이들의 참여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생명과 아름다움을 돌보는 노력에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혼자 가는 길은 외롭고 금방 지치기 마련이지만 여럿이 함께 가다 보면 길을 찾기도 쉽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도 생기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연대해서 함께 문제를 풀려고 할 때 우리는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연대하는 일을 위해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연대한다고 해서 개인의 고유성은 소홀히 하고 획일적인 길을 가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찬미받으소서」 회칙이 말하듯이 공동의 집을 돌보는 데에는 “모든 이의 재능과 참여가 필요”하고, “우리는 모두 저마다 자신의 문화, 경험, 계획, 재능으로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피조물 보호에 협력할 수 있습니다.”(14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저마다 한계 속에서도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며 생명을 보듬고자 하는 마음이겠지요. 우리가 하는 일에 부족한 구석이 있더라도 한마음 한뜻으로 계속 나아가다 보면 새로운 가능성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중요하고, ‘한 명의 완전한 비건’보다는 ‘백 명의 어설픈 비건’이 낫습니다.

생태영성살이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는 여정입니다. 다른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이웃 본당 교우들과 함께, 타종교 신자들과 함께, 시민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나누며 같이 행동하는 길입니다. 더디 가는 것이 힘겹고, 변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면 담쟁이를 한번 바라보세요. 물 한 방울, 흙 한줌 없는 벽에 붙어살면서도 담쟁이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따뜻하게 손잡고 그 절망의 벽을 넘어갑니다. 서두르지 않고 ‘올라가자, 올라가자!’ 서로 응원해 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메마른 벽을 푸르게 물들입니다. 우리도 담쟁이처럼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면서 ‘함께’ 걸어간다면 다가올 미래는 '희망’이 될 수 있겠지요. 아무래도 내년 창조 시기 기도 모임에는 좀 더 많은 분들을 초대해야겠습니다. “그래요, 여럿이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