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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
천국으로 옮겨진 영혼


글 김삼화 아눈시앗따 수녀|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성물 판매소에 가면 익숙한 고전적인 성화가 있어 작가가 누구인지 늘 궁금했다. 이 작가는 안정된 구도, 원근법과 해부학에 충실한 묘사, 그리고 종교적, 자연적, 신화적 주제의 가치관을 중시하면서 사실적으로 그렸다. 아름다운 여인과 소녀, 귀여운 아기 천사와 큐피드 등은 섬세하고 순수하며 고결하게 아름다웠다. 고운 살결과 자태로 인물을 그려 그 누구도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오늘은 작품이 너무 아름다워 프랑스와 미국에서 큰 환영을 받으며 당시 아카데미 미술을 대표했던 천재 화가 월리암 아돌프 부게로(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를 소개하고자 한다.

1825년 프랑스 라로셸에서 와인 상인이었던 아버지 시어도어 부게로와 어머니 마리 보닌 사이에서 태어난 부게로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였으며 열두 살에 삼촌에게 보내져 본격적인 그림 교육을 받았다. 프랑스 국립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앵그르에게 사사를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고 한평생 그림만 그린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당대 최고의 화가로 불리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더불어 인상파가 등장해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난 색채와 빛을 순간의 감각으로 표현하면서 현대미술이 시작되었다. 격변하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자신의 교육 방식을 고집한 부게로는 평론가들로부터 창의성이 부족하고 틀에 박힌 그림을 그린다는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이후 인상파 화가인 드가, 폴 세잔 등의 비난을 받고 대중에게 외면받으며 서양 미술사에서 깨끗하게 지워졌다. 그렇지만 부게로는 세상의 여론에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하루에 16시간씩 화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린 부게로는 80세가 되기까지 822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

“매일 나는 기쁨에 젖어 작업실에 갔다.

저녁에는 어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했지만

다음날 아침이 오기에 참을 수 있었다.

내 작품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하나의 욕구가 되었다.

내가 인생에서 다른 무엇을 찾든 간에

내 소중한 그림을 못 그린다면 나는 비참해질 것이다.”

- 월리암 아돌프 부게로

20세기 말부터 모더니즘에 싫증이 난 사람들이 부게로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미술 경매 시장에서 두 배 이상 가격이 올랐고 1984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회고전은 성황리에 치러졌으며 그 후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11월 위령 성월을 맞이하여 부게로의 많은 아름다운 그림 중에 ‘죽음 앞에 평등’(1848)과 ‘천국으로 옮겨진 영혼’(1878)을 소개하고자 한다.

‘죽음 앞에 평등’은 부게로의 대표적인 초기 작품으로 꾸밈없이 죽음과 마주하게 한다. 황량한 광야에 젊고 건강한 남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반듯이 누워 있다. 이미 생명이 빠져나간 인간은 죽음 앞에 아무것도 감출 수 없다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파란색이 아닌 연두색 하늘도 이승의 하늘이 아닌 듯하고, 어떠한 인위적인 자연의 묘사가 없음은 죽음을 철저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검은 날개를 편 죽음의 천사가 바람처럼 날아들어 흰 천으로 죽은 이를 덮는다. 천사의 시선은 아래를 보지 않고 앞을 향해 있다. 그것은 마치 인간 존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죽음을 멸망과 구원이라는 종교적인 좁은 시선에서 벗어나 모든 인간의 문제이고 늘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사건임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하나는 ‘천국으로 옮겨진 영혼’이라는 작품으로 신앙인으로서 위로가 되는 그림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죽음은 두려움이 아닌 희망으로 부드럽게 다가온다. 위풍당당한 날개를 가진 두 천사가 세상을 떠난 영혼을 죽음의 어둠으로부터 구름을 뚫고 빛을 향해 데려가고 있다. 아마 그곳이 천국일 것이다. 2년 동안 두 아들과 아내를 잃고 슬픔에 잠긴 부게로는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염원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죽음은 본래 고향인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복자 피에르 조르조가 남긴 말이 생각난다. “내가 죽는 날이 내 생애에 가장 아름다운 날이 될 것이다.” 우리가 죽는 날도 천국으로 옮겨지는 가장 아름다운 날이 되기를 희망하며 11월 위령 성월에 세상을 떠난 영혼들이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