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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서 온 편지
나의 작은 꿈① (我的小夢想, 워더시아오멍시앙)


글 강우중 베르나르도 신부|타이중교구 선교사목

요즘 즐겨 듣는 노래가 한 곡 있습니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라는 제목으로 최근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곡입니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에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피어나려는 이들에게 바치는 앨범’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삭막한 건물과 같은 세상에 덩그러니 피어있는 한 송이 장미와 같은 작은 꿈이 언젠가는 모든 곳을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것이 이 곡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곡 자체가 주는 매력과 더불어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는 신앙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모습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한 알 한 알 묵주를 굴려 가며 기도하는 신앙인의 모습이 마치 한 송이 장미가 힘겹게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 더 즐겨 듣게 됩니다.

묵주 기도 성월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문을 여는 이유는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가 꿈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삭막한 세상에서 정성스레 기도하는 우리에게 있어 과연 꿈이란 무엇일까요? 사회에서 성공해 명성을 얻는 것일까요? 아니면 부유함으로 이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사실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 꿈은 다름 아닌 하느님 나라입니다. 세상 모든 이가 하느님을 알고 그 분을 믿고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신앙인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꿈이지요. 특히 타종교, 그것도 도교나 불교가 지배적인 타이완에서 매 주일 미사 전 본당 교우들이 함께 바치는 로사리오 기도는 아주 작디 작은 꽃, 다른 이들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아 여차하면 밟히고 말 작은 꿈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성소가 줄고 본당에서 청년들을 보기 어려운 이 세상 속에서 우리의 기도, 곧 우리의 꿈은 펼쳐 나가기보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마냥 그저 힘겹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인 것만 같습니다.

이처럼 상황이 여의치 않은 시기 속에서 타이중교구는 2022년 4월 16일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비록 현실은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타이중교구는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교구가 어려움 중에 있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청했습니다. 특히 사목자들의 활동이 더 널리 이루어지고, 쉬는 교우들이 신앙을 회복하고, 어려움에 처한 가정이 그리스도와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지향을 담아 2021년 4월 17일 개막미사를 시작으로 1년간 한 달에 한번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마련해 간절한 마음을 더욱 굳게 다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교구 내 각 구역은 60주년 당일이 오기까지 교우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순회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속한 구역에서도 행사를 위해 몇 차례 회의를 거쳐 무엇을 할 지 논의했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갔고 그 결과, 우리 구역에서는 기도문이 지향하는 바를 참고해 현재 교구가 처한 어려움에 관해 표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진행해 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특히 저는 구역장 신부님의 뜻에 따라 제가 사목하는 본당을 중심으로 구역 내 각 본당 젊은이들을 모아 성소와 청년들의 신앙이 다시 활기차게 피어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진행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막상 책임자가 되니 여러 걱정이 앞섰습니다. 왜냐하면 큰 행사에 한 부분을 맡게 된 것이 처음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청년들을 참여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교구 행사와 우리가 진행해야 할 프로그램’에 대한 방법을 찾기도 전에 부담감만 더해 왔습니다. 게다가 이 당시 코로나19의 영향력 안에 있어 많은 사람이 함께 무언가를 해 나간다는 것이 조심스러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본당은 청년층이 희박해 과연 무엇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어떠한 진행 과정도 내놓지 못한 채 반년이라는 시간을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토록 한걸음도 떼지 못하고 주저했던 것은 아마도 ‘부족함을 채워 주실 하느님의 은총을 믿지 못했던 것의 결과가 아니었을까?’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부담을 내려놓고 힘을 내어 주어진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며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저의 이야기를 통해 청년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무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청년들을 모집해 무 대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를 해 볼 수 있는 거리가 생겼다는 것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한줄기 희망을 찾은 저는 더이상 지체할 수 없어 청년들에게 제 이야기를 어떻게 전할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궁리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무대에 올라 노래를 통해 저의 이야기를 풀어 갈까?’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교우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없기에 다른 방법을 찾았고, 그 결과 짧은 드라마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내용은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하찮게 여겼던 직업, 배달원에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현상이 과거 IMF 시대 때 환경미화원에 지원하려는 현상과 많이 닮았다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천대시하던 것이 귀하게 여겨지는 모순과 그 모순 속에서 발견되는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러한 이야기를 청년들에게 해 주고 싶었을까요. 그건 바로 저의 생각과 의지로 희망했던 첫 꿈이 바로 ‘환경미화원’이었기 때문입니다. - 다음 호에서 계속